언제부턴가 ‘사나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이 블로그 이웃으로 들어왔다. 비교적 공감도 자주 눌러주신다. 새 이웃이 한 사람 늘었구나 생각했다. 그 이웃님이 나랑 한 집에 사는 할배라는 것은 아주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제는 오전에 수업하고 오후에 영어학원에 다녀오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 저녁 할 시간은 일러서 쌀만 씻어 놓고 피로감에 잠시 누워 눈을 붙였다. 수업 나간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렀더니 많이 피곤했나 보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게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었다. 세상에 ~ 놀라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아무도 없다. 씻어놓은 쌀은 밥이 되어 있고, 설거지거리 몇 개가 잘 씻어져 엎어있다. 식탁도 깨끗이 치워져 있다.
그의 문은 닫혀있다. 힘주어 열어도 안 열린다. 초저녁 잠이 많은 그는 내가 곤히 잠들어 있으니 깨우지 않고 혼자 저녁을 해결하고 잠자리로 들어갔나 보다. 문을 항상 잠그고 자는 버릇이 있다. 오래된 집이라 문에 틈새가 있다. 얕은 바람에도 한 번씩 문짝이 소리를 낸다. 잠에 민감한 그는 문 틈새로 들어오는 빛과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도 싫어한다.
혼자 조용히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내 방에 들어가 TV를 틀었다. 시간 맞춰 보는 드라마가 시작 전이다. 다음날 아침은 그가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날이다. 어르신 일자리로 일을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토스트와 계란을 구워 먹고, 아마 우유와 함께 아침을 해결하고 나갔을 것이다.
나는 오늘 수업이 없는 날이라 느긋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냉동고에서 쑥떡 두 조각을 꺼내 해동시키고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점심때쯤 되어서 일을 마치고 그가 들어왔다. 내 방문을 슬쩍 열고 내가 있는 것을 확인하자 '점심 먹으러 가잔다.' 옳거니 얼른 일어났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은 찬도 없고 점심으로 뭘 차리나 궁리하고 있던 중이다.
점심을 먹고 내가 계산하러 나가려 하니, 자기가 계산하겠단다. 오늘 점심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사는 그가 냈다. 그러고 보니 이틀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 듯했다.
일주일에 삼 사일은 이런 상황이다.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다. 저녁에는 때때로 그가 좋아하는 돼지 삼겹살을 사서 들고 와 구워내고, 나는 소주를 꺼내 준비한다. 어떤 날은 내가, 좋아하는 통닭을 사 와서 풀어놓으면 그가 소주를 꺼내 한잔씩 걸치고 저녁을 해결하기도 한다.
그는 어쩌다 한 번씩 자기 방을 청소하면서 내가 없을 때는 내 방도 청소 해 주기도 하고, 나도 그가 없을 때는 욕조를 한 번씩 청소해 주기도 한다. 때로는 불만스럽게 빨래를 왜 자주 하지 않느냐고 투박스럽게 말하면, 나는 적은 빨래를 돌리려면 물만 많이 들어서 빨래를 모아서 세탁기를 돌려야 한다고 우기기도 한다. 그러다 서로가 주장이 강해지면 잠시 뿌루퉁 해 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 화해의 제스처로 소량의 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가기도 한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취미도 전혀 달라서, 취미에 맞춰서 시간을 보내느라 이틀에 한 번꼴로 얼굴을 보는 날도 태반사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지낸다. 어쩌다가 서로가 얼굴 붉힐 일이, 정말 어쩌다가 일어나도, 절대 서로 간에 빵 빼 ~!라는 말은 안 한다.
방 빼~라고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빵을 빼야 하는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