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기관사를 떡이 되도록 해 놓고 씩씩거리며 나오는데, 어두운 골목길에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있다. 그 시대는 동네 골목마다 작은 유곽들이 많았다. 일본인 사내들도 가족을 떼어놓고 혼자 돈 벌러 들어와 사는 사람도 많고, 조선인들도 먹고살기가 힘들 때니까, 부모들이 딸을 그런 곳에 팔아먹기도 하고, 스스로 돈 벌러 나가는 여자들도 많았다.
뭔가 싶어 다가가는데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살려달라면서 소리를 질러대는데 금방 죽을 것 같은 비명이다. 그가 사람을 헤치고 보니까 일본인 두 놈이 훈도시만 차고서는 작은 여자를 희롱하다가 때리고는 했다. 여자의 속 살이 그대로 보였다. 눈이 돌아갔다. 몰려든 사람들이 둥그렇게 서서 씨름 구경하는 사람들처럼 보고 있다. 사람들한테 더 화가 났다. 같은 조선인에게 ‘이누’’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그런 애먼 말은 할 줄 알면서, 같은 조선인이 욕을 당하고 있는데 구경만 하는 조선인들에게 더 화가 났다.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쑥 들어가, 처음에는 일본말로 좋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들도 그가 일본인인 줄 알고, 웃으며 우호적으로 대했다. 그때야 자세히 보였다. 여자는 겨우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다. 얼굴에 화장이 번져서 무슨 탈을 쓴 듯한 데다가, 거의 발가벗겨진 것 같은 몸에는 혁대에 맞은듯 굵은 줄이 죽죽 있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나온 게 보였다. 순간 그의 눈이 돌아갔다.
치쿠쇼(짐승)!!“
그야말로 엄청난 욕이다. 일본인들은 그가 조선인이란 걸 알았다. 두 놈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조선에는 정말 많은 욕이 있다. 조선에서 5년 정도 사는 동안, 내가 가장 흥미롭게 여겼던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욕이었다. 일본에는 통용되는 욕이 많이 없다. 기껏해야 ‘빠가야로’가 모욕적인 욕이다. 상대에게 더 큰 모욕을 주고 싶으면 짐승에 비유해서 하는 정도인데, 조선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욕이 많다. 지역마다 사용하는 욕도 다르다. 특히 나이든 부인들이 하는 욕은 아무리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욕을 할 때의 억양도 재미있다.
나는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진로를 문학전공으로 바꿨다. 애초부터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 그런 언어적인 분야에 유독 흥미를 느낀다. 메모장에 적어놓은 조선의 욕이 몇 페이지에 달한다. 그래도 정확한 뜻은 모른다. 궁금해서 그에게 메모장을 보여주며 뜻풀이를 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그는 그냥 씩 ~ 웃기만 했을 뿐이다.
이미 술이 많이 오른 두 일본인은 그를 무시하고 달려들었다가 한 주먹에 나뒹굴었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현장에서 흥미롭게 보고 있던 일본인들의 자존심이 그 장면을 그대로 볼 수 없었을 테다. 떼거리로 몰려나와 그에게 덤벼들었고, 그때까지 숨죽이고 지켜보던 조선인들도 튀어나왔다. 엄청난 패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그날 밤, 모두 주재소로 잡혀갔다. 주재소로 잡혀간 무리 중에 일본인들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했고, 그들은 그날 밤 훈방조치로 모두 풀려났다.
그때는 조선은 일본 식민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수 밖에 없다. 거기다 그 시점에는 조선인들의 거센 항거가 있었던 때이다. 저항을 누르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경계와 감시가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삼일운동 이후에는 특히 심했다. 운동권 사람들을 잡아들이는데 혈안이 되어있을 때이기도 했다. 포상금도 많이 내걸어서, 같은 조선인끼리도 서로 밀고하기도 하는,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다.
주재소 들어갔다가 죄가 중하면 경찰서로 옮겨가야 했다. 그 당시에 경찰서로 이송되면 웬만해서는 나오기가 힘들 때였다. 나온다 해도 온전한 몸상태로 나오기는 힘들었다. 안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출옥 후에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많았다.
아무리 배포가 큰 그였다 해도,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다급한 일은, 다음 날 일을 못 나간다는 것이다. 보통은 기차를 타고 한 번 돌고 오면, 하루나 이틀 쉬고 나가는데, 그때는 다음 날 대체 화부로 일을 나가게 되어있었다. 그날 바통을 받는 화부의 집에 초상이 나서 부탁을 받은 것이다. 밤에 잡혀 들어오면서도 그는 내일이 걱정되어 순사에게 간곡하게 연락을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순사도 그 사실만은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지체 않고 그날 밤으로 철도국으로 연락을 해 둔 상태였다.
아버지에게 바로 전달되었다. 다음날, 철도국 직원을 보내서 그를 면회하게 했다. 그는 전혀 기대한 일이 아니어서였는지 놀라워했다. 우리집에서 나온지 3년이 넘었다. 나온 후에는 일체 연락을 안 했다. 아버지도 표면상으로 그를 찾지 않았다.
아버지는 쉽게 생각했다. 직원을 보내서 주재소장에게 잘 말하고 그를 빼 오라고 했는데 주재소장이 안된다고 했다며 그냥 돌아왔다. 어젯밤에 경찰서에 이미 보고를 한 상태라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위의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혼자 잡혀 온 것이 아니라 조센진이 무더기로 테러를 한 것인데 그가 주도한 인물이란 것이다.
이것은 소소하게 취급할 수 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자칫하면 그가 크게 걸려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직접 갔다. 주재소 소장은 아버지를 보고 놀란 듯했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의 인물이다. 겸손한 자세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경찰서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의 인품은 그럴 때 알 수 있다. 결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경찰서 고등계에서 사람이 와서 아버지와 대면했다. 그의 직급은 아버지보다 아래다. 그러나 형사는 그런 것에 비굴해지거나 주눅드는 인물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기술관리국 사람이다. 그 당시 고등계 형사의 파워는 그 모든 것보다 위이기도 했다. 그만큼 복잡하고 위기에 노출된 민족 간의 대립이 심했던 때였다.
한 치의 수그러짐도 없이, 고등계 형사는 집단 패싸움이기에 형사범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아버지도 강하게 맞섰다.
"지금 만주로 철도 기술자들이 빠져나가고 있어서, 사람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런 유능한 사람을 잡아다 넣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 사람 때문에 패싸움이 벌어졌다. 그가 국가 전복을 위한 할동가가 아닌지 자세히 조사하고 혐의가 없으면 풀어주겠다."
"그 사람은 그런일 하는 사람 아니다. 지금 당장 풀어주라. 하루가 급하다. 하루 기차 운행을 못하면 얼마나 많은 손실이 있는줄 아는가?"
"화부가 하루 쉰다고 그 정도인가? 너무 엄살이 심하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기관수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화부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가? 기관수와 손발이 맞아야 사고가 없다. 숙달된 화부가 필요하다. 아니면 사고로 이어진다. 그는 훌륭한 기술자일 뿐 아니라, 내 아들을 위해서 칼도 여러곳 맞은 사람이다. 확인해 봐라. 그의 몸에 칼자국이 몇 곳이나 있다.“
그가 나 대신 칼 맞은 것이 그걸 증명했다. 형사는 상처를 확인하고서는 아버지를 보는 눈이 급변했다. 우호적인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느낀 순간, 그는 못 나가겠다고 밀어 부쳤다.
"같이 잡혀 온 사람이 여덟이나 있다. 그들도 풀어달라. 일본인들이 잘못했고, 먼저 패거리로 나와서 나를 팼다. 이 사람들 아니면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나 혼자 나가게 되면 일본사람 빽으로 나가게 되었다고, 앞잡이라는 누명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것 죽기보다 싫다. 일본인 집에서 녹을 받고 살았어도 내 일을 할 뿐이었지 앞잡이 해 본적 없다. 그러니 다 같이 나가게 해 달라."
아버지가 거들었다.
”우리 일본인들도 무식한 사람들을 개몽해야 한다. 그때의 상황을 들었을 때 내가 얼굴이 붉어졌다. 그게 무슨 추태냐?“
아버지가 그날 있었던 일을 들은대로 형사에게 말했다. 형사도 나름 인테리어서 그 말에 동의하고 그날 모두 풀어줬다. 아버지는 후에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게 탄복했다고 한다. 그는 좀 더 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고도 했다. 아버지가 조선의 어린 인력거꾼을 데려와 함께 살면서 그에게서 본 인성은, 아버지를 완전히 함몰시켰다. 아버지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높은 지위를 가졌지만, 솔직히 지뢰밭 같은 조선에서, 어린 그가 옆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가 집을 떠나고 난 뒤에는 알지 못할 불안감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