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별빛서점 07화

작별

by 칠십 살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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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서 그냥 살라고 하고 싶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셨다.


"며칠 푹 쉬었다 가게”


이제는 장년이 다 된 그에게 아버지는 하대를 하지 못하셨다. 그때까지 우리집에서 식모로 있던 조선인 하녀와 재회하게 되었는데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보다. 내가 있을 때부터 하녀의 어린 동생이 가끔씩 언니를 찾아 왔는데 내 기억으로는 조금 지저분한 행색의 소녀였다. 그날 성장하여 처녀가 된 하녀의 여동생도 언니를 보러 와 우연히 셋이 재회하게 되었는데, 2년 후, 그 어린 소녀와 혼인을 했다고 아버지가 편지로 소식을 전해왔다.


그때가 그의 나이 27살, 그녀의 나이 16살이었다. 그녀가 많이 궁금했다. 어떤 여인이길래 그의 마음에 들었을까? 그녀의 일생은 편안하리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들이 살 집을 마련해 주셨다. 하도 사양을 해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아들을 살려 준 값이며, 대신 자네가 다리 한쪽을 절게 된 보상이네. 나는 이로써 자네에게 빚 청산을 하고 싶네. 그리고 늦더라도 철도학교에 복학하게. 화부로만 있기에는 자네 기술이 아깝지 않은가? 지금 시국으로 봐서는 머지않아 일본이 조선에서 물러 나야 할 때가 올 것 같으니, 그때 일본 기술자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면, 누가 기차를 운전하겠는가?”

그 말을 듣고서야 아버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조언을 새겨 들었다. 첫 아이가 생기고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감이 생겼을 때 철도학교에 들어갔다. 적지 않은 나이이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환경이 편하지만은 않았을터인데 수석 졸업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육개월 정도 보조기관수 생활을 하다가 정식 기관수가 되었다. 초특급 진급이었다. 수석 졸업이어서 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일본은 전국(戰國)의 시대였다. 전쟁에 많은 젊은이가 동원될 때여서 일본인 철도 기술자들도 본국으로 많이 돌아갔기 때문에 시기가 더 빨리 온 것이다.

그는 그의 꿈을 이루었고 기관수가 천직인양 묵묵히 열심히 하였다.그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요동칠 때였다. 조선의 백성은 세계정세에 어둡다. 신학문에 눈뜨고 일본 유학을 온 학생들을 중심으로 엘리트인들 사이에서는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의 신분은 어느 때보다 조선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본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했으나, 후임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에서 정해진 그 당시의 정년이 넘은 상태였음에도 본국에서는 아버지의 사임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유인 즉, 조선을 잘 아는 사람이여서이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왔다. 아버지는 다음 행보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일본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거실에 혼자 계셨다. 그 넓은 집에는 조선인 하녀만 남아 있었다. 어머니와 그에 딸린 사람들은 지난 달에 귀국 시킨 뒤였다. 사무실 직원들에게도 가족들을 일본으로 귀국시키게 하고, 꼭 필요한 실무진만 남아 있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송을 들은 조선인들이 거리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들의 목소리와 만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고조되어 위협으로 아버지 귀에 들려왔다. 머지 않아 이 집으로 조선인들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는 일일이 연락을 해서 알아서 피신하거나 일본으로 들어갈 방법을 강구하라 했다. 마지막으로 나만 남는다. 본국에서도 정신이 없었던지 아무 하달 상항이 없다. 아버지는 지시가 내려 올 동안 기다렸다.

어둠이 내려앉을 저녁 무렵에 그가 들어왔다. 그를 보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빛이 따라 들어오는 듯했다고 아버지는 후일 말씀하셨다. 그는 아버지에게 간단한 짐을 챙기시라 하고, 집에서 입은 복장 그대로 하녀와 함께 그의 집으로 걸어갔다. 차를 타고 가는 것은 무리의 목표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부터 거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뒤늦게 광복 소식을 알게 된 민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부르는 만세 소리가 군악대의 북소리마냥 들려왔다. 아버지는 본국의 지시를 받기 위해, 무리들 사이를 뚫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는 아버지와 나흘 동안 동행해 주었다.

기차가 철로 위에서 방치되고 있었다. 길에 몰매를 맞고 쓰러진 일본인 뿐 아니라 조선인들도 보였다. 아버지로서는 그들의 흥분을 막을 힘도 의지도 없다. 철도 사업은 일본인들이 조선의 땅에서 시작한 사업이며, 많은 저항을 받았지만, 조선인의 생활을 한 단계 업그레이 한 것만은 사실이며, 조선인들에게도 어떻게든 이어가야 할 중요한 사업임에 틀림 없다. 그 시점에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요구하는데로 따랐을 뿐이다. 순조롭게 마지막 일을 마무리 하고 무사히 귀국절차가 이루어졌다.

떠나는 날, 그와 조선인 하녀가 아버지를 배웅하러 나왔다. 조선에서 사는 동안 누구보다 아버지에게 각별한 충의와 우정을 보여 준 두 조선인이었다. 뒤에 누군가가 찍어서 보내 준 사진, 그 사진 속에는 그와 아버지가마주 서서 구십도로 허리를 굽혀 서로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우리 집 거실 한 가운데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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