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별빛서점 05화

by 칠십 살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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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몸이 회복된 후에 복귀해서 혼자 학교에 다녔는데, 그 소식이 전해졌는지 일본 급우들의 우호적인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날 테러를 당하면서 들었던 앞잡이란 말이 마음에 꽉 들어앉았기도 했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껏 대 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도 그런 눈치를 받고있는 터였다. 그것도 조선인 학생들에게만 그런 눈치를 받으면 받을 만하다 생각 하겠는데 일본인 학생들도 그런 눈치를 준다는 게 정말 싫었다.


이제 나도 없는 상황에 혼자 학교에 그대로 다닌다는 것은 전폭적인 아버지의 빽이라 생각할 테니 확실하게 일본놈 앞잡이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는 정말 동포에게 칼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깝고 억울했지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도 나가겠다고 했다. 가방모찌 해 줄 대상도 없고 학교도 안 다니면서 우리집에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아버지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언제라도 학교 복학하고 싶으면 말하라고 하면서 500원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당시 철도국 일반 직원들 봉급이 30원 정도였으니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는 집을 나와서 철도 놓는 일을 했다. 그때는 조선 팔도에 철로를 연결시키는 사업이 주 사업일 정도였으니 일 자리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철도학교를 다니다 나왔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안 했다. 그것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는 몰랐겠지만 아버지는 그가 집을 나간 후, 사람을 시켜 지켜보게 했다. 그가 철로 작업장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화부로 일하게 하라 했다. 물론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지시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은 바로 전달되었다. 아버지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화부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현장 소장이 돈을 받아 챙기고 화부를 시켜 주는 경우가 정례로 통하던 시대였다.

화부는 기차에 석탄을 넣는 사람을 말한다. 화부는 그래도 기술이 필요해서 두 달 정도는 견습을 하고 기차에 오르게 되는데 근는 보름 만에 기차를 탔다. 그것은 아버지의 입김이 개입되지 않았다. 현장 소장이 알아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의 뒤에 아버지가 있는 것까지는 몰랐겠지만 누군가 힘이 있는 사람이 그를 엄호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챘을터이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가 일 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런 결정을 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은 힘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요령과 순발력도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기차에 그냥 석탄을 퍼 넣어서만 되는 게 아니라 기차가 움직일 때 속력에 맞춰서 또 오르막 내리막에 맞춰서 조절을 잘 해야 한다.

그는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일에 행복해 했다. 일반 철도 막노동꾼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막노동이긴 하지만 급료가 다르다. 거기다 배급되는 옷도 다르다. 기관수, 조수와 같이 기차의 운행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진짜 철도국 직원인 거다. 물론 보조기관수하고는 급이 다르다 보조기관수는 정식 철도양성소를 나온 사람이다. 기관수가 자리를 비우게 될 경우, 대신 기차를 운행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기관수로 올라가게 된다. 화부의 위치는 일반 노동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언제든지 짤릴 수 있는 자리이긴 하다. 그가 철도학교를 정식으로 졸업했다면 보조기관수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의 꿈은 기관수였다. 그 길이 자신의 운명의 길이라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꿈은 접어야 했다. 그가 아버지를 찾아 가 다시 학교에 다니겠다고 부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자였다. 그런데 뜻밖에 생각지 못했던 화부 자리가 주어졌다. 그도 이 일을 오래 열심히 하다 보면 화부 자리로 옮겨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은 했겠지만, 그 자리에 돈이 오가는 것을 알았으니, 그런 행동을 할 그가 아님에 포기하고 있었다.

내막을 모르는 그는 현장 소장에게 고마워 했다.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 사람이다. 그는 뒤에 소장이 철로를 무단점검하고 철로 공사를 막으려고 난입한 자들에 의해 거의 절명할 순간에 뛰어들어 구했다. 그때 현장의 공기가 워낙 험악해서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였지만, 그의 타고난 의협심은 그런 공포를 물리쳤다.


문제는 소장이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조선이 벌린 테러로, 위험에 처한 일본인 소장을 목숨까지 걸고 구했다는 것은, 조선인이 보았을 때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점점 일본인을 위해 일하는 일본인 앞잡이로 몰려가게 되었다. 그로써는 슬프고 아픈 일이었다. 그 당시에 조선인들의 운동이 심했던 시기다. 야밤에 조선인들이 선로를 막아놔서 기관차와 객차가 떨어져 나가 탈선하는 경우도 생기던 때였는데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철로 복구에 힘을 보태었고 그의 타고난 손재주는 빛을 발했다. 그를 찾는 자가 여기저기 많았다. 어느 조직에서든 핫한 인물은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적도 많이 생기는 법이다.

기관수, 보조기관수, 화부, 3인이 한 조가 되어서 원산까지 가는 화물차를 운행했다. 그는 어쩌면 그때부터 다시 정식 기관수에 대한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 틈이 날 때마다 책을 보고 혼자서 연구도 많이 했다. 기관실에는 기관수하고 보조기관수만 들어갈 수 있다. 화부는 화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역에 정차하더라도 기관실은 화부는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었다. 그는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슬쩍슬쩍 기관실에 들어가 보았다. 기관수는 그가 들어오는 것을 모른척 했다. 아니 오히려 이거저것을 살피면 잠시 짬을 내어 알으켜 주기도 했다. 문제는 보조기관수였다. 그는 그런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가 기관실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불같이 화를 냈다. 여기는 화부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고, 분수를 지키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밥그릇에 누군가의 숟가락이 들어오면 싫어한다. 그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런데 보조기관수는 정도가 심했던 모양이다. 보조기관수도 조선인이다. 그가 일본인 기관수와 관리자에게 자주 불려 가 도움을 주고 오는 것이 못마땅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단순한 시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그 당시에는 기차를 타고 시발점에서 종착점까지 왕복으로 다녀오면, 흔히 눈먼 돈이란 것이 꽤 생겼다고 한다. 나로서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열차 운행시 필요한 석탄을 보급받을 때 좀 더 많이 받아서, 남겨진 것을 빼돌리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불법 유통에 관해서는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이 그들의 세상에서는 관례였던 것 같다. 그날도 원산까지 다녀오고, 매번 하던 대로 함께 좋은 곳에 가서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했다.

기관수는 항상 먼저 들어갔다. 그들이 남아서 해야 할 시간을 주는 거였다. 둘만 남아서 한 잔씩 더 하면서, 보조기관수가 그에게 기관수로부터 받은 돈을 분빠이 형식으로 건네는 타임이기도 했다. 사실, 그는 그런 행위가 불편했을 것이다. 결코,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전례를 따르는 것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기관수에 대한 예의 차원이며, 또 모두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 혼자 발을 뺀다는 것도, 동료들에게 이질감을 주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날은, 보조기관수가 작심을 했는지, 술김에 본심을 내놓은건지, 돈을 건네면서 슬쩍 한마디 던졌다.

"이누, 이것 받아"

'이누'는 일본어로 개이다. 통칭 이럴 때의 의미는 '사냥개'란 의미를 넘어 '앞잡이'라는 의미로 굉장히 적나라한 표현에 해당된다. 그 말 한마디에 폭발했다. 안 그래도 나이도 적은 놈이 그에게 명령조로 이것저것 시켜도 보조기관수라고 대접해주고 참았다. 그놈이 조선인 화부나 다른 보조기관수들에게도 그런 말을 지껄였는지 자기를 보는 눈이 껄끄러워도 모른 체했는데, 그날은 그 말 한마디에 터졌던 거다. 일어나서 그냥 주먹을 날렸다. 둘이 몸싸움이 났지만 보조기관수는 그의 상대가 못 되었다. 떡이 되어 나자빠진 놈을 그대로 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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