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페이지가 다 넘어갔는지 모르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왔다. 눈물이 내 얼굴을 홍건히 적셔놓았다. 한 참을넋놓고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아버지를 떠 올렸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이 동네에 왔는데, 아버지를 만나기도 전에 책 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책 속의 그는 엄마가 나에게 들려줬던 아버지와 닮았다.
내 아버지도 역무원이셨다. 역무원으로 평생을 사시다 가셨다. 그때 우리 집은 동네 작은 탄광촌 안에 있었다. 아버지는 광부가 아니고 철도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탄광촌 안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살았다. 탄광촌 말고는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곧잘 어린 나를 데리고 일터로 가셨다. 아버지가 일했던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깊은 산 속 마을 탄광촌에 있는 역이었다. 사람들은 그 기차역을 <하늘아래 첫 정거장>이라 불렀다.
맞이방 가운데 오래된 난로속으로. 석탄을 수시로 넣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석탄이 타면서 매캐한 연기로 콜록콜록 기침을 한참 했던 기억도 난다. 난로 위에는 엄마가 싸 준 양은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난로가 발갛게 달아오르면 따뜻함에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그때 그곳에는 아버지 혼자였다. 아버지는 역장이면서 직원이었고, 제일 높은 사람이면서 제일 아래 사람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철로 저 편 차단기 건너편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청색 흰색 깃발을 들고 계셨다. 내 나이 11살 때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남들이 할아버지라 부르는, 오른쪽 다리를 조금 절룩거리는, 지독히도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막내인 나를 오십이 넘은 나이에 낳았다. 그리고 육십이 넘어서 돌아가셨다. 네 살 정도까지는 기억이 거의 전무 하니,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6년 정도라 해 두자. 아니면 네 살 전의 기억도 그 속에 묻어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와 엄마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 아버지가 산 나이보다 십 년을 더 살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엄마 아버지보다 더 노인이 되어있다. 지금의 나를 아버지와 엄마가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혼자 비식 웃는다.
아빠가 유난히 그립다. 이 동네에 어렵게 왔다. 아버지를 꼭 만나고 싶다. 아버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나를 이 자리에 앉게한 젊은 점원이 앙증맞은 광주리에 눈깔사탕 두 알을 담아 내민다.
"재미 있으셨나요?"
"녜..이 동네 온 것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였거든요. 그런 마음이어서일까요. 책 속에서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아요"
"그러셨나요, 그래서 우셨군요"
"아버지가 진짜 보고 싶어요. 이 동네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움을 가지고 계신다면, 마음 속에서 그 분을 지우지 않으셨다면 이 동네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꼭 만나실겁니다."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았나 보다. 점원이 한없이 따뜻한 위로의 미소를 보낸다.
"사탕을 드셔보세요. 마음이 편안해 지실겁니다."
사탕을 집었다. 투명한 눈깔사탕 안에 <감사>라는 글자가 깜빡이고 있다. 어머.. 놀래서 다른 사탕 하나를 집었다. 거기에는 <사랑>이란 글자가 깜빡이고 있다. 너무 예쁘기도 하고, 감동이기도 해서 쉽게 입에 넣지 못하고 그를 쳐다봤다. 그가 웃으며 입에 넣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갔다.
<사랑>이란 글이 들어있는 사탕을 입에 넣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으로 번지더니, 침이 가득고이고 달콤함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심장 안에서 향내가 퍼지는 듯하더니 온 몸이 알 수 없는 황홀감에 감싸이는 듯하다. 그 느낌에 취해 <감사>라는 글자가 깜빡이는 눈깔 사탕을 또 입에 넣었다. 좀 전에 느낀 황홀감이 조금씩 옅어지는 대신 알지 못할 감동이 심장을 뜨겁게 한다. 뜨거운 기운이 온 몸으로 번져 나가는 듯, 서서히 한없는 평화로움이 전신을 감싼다.
행복해 졌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리움과 아픔이 사라지고 온 몸이 알지못할 행복감으로 뻐근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정말 아버지를 찾아야겠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 찾아보고 가야겠다. 그럴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 동네 들어올 때 관리 아저씨가 기차가 한 편밖에 없다며 돌아가는 기차를 놓치지 말라고 알려주셨는데 그 사이 잊고 있었다.
책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 앞에 명패가 붙어 있다. 별빛서점장 <쇼스케 겐지>, 아.. 책 속의 화자는 <쇼스케 겐꼬>였는데... 신기한 눈빛으로 그를 봤다. 내 눈빛을 마주하는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 웃음기를 머물고 있는 듯했다.
“계산해 주세요”
여기서는 책을 팔지는 않습니다”
“아.. 그런가요. 소장하고 싶은데..”
"그러시군요. 유감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한 마디를 덧 붙였다.
“언제 다시 와 볼지 모르지만, 그때도 이 책방이 여기 있을까요?”
“그럼요, 이 책방은 언제나 여기 있을겁니다. 그 책도 꼭 있을겁니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가 오세요. 선한 사람들에게는 이 별빛서점은 항상 열려있으니까요”
친절한 미소가 얼굴 전체에 번져있다. 다정한 미소에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알지 못 할 슬픔이 모두 녹아내리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조금 전에 먹은 눈깔사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놓고 나왔다. 젊은 점원이 문밖까지 따라 나왔다. 허리를 반으로 굽혀 깍듯이 인사를 한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당황스럽다. 이렇게까지 친절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도 맞받아 허리를 구십도로 꺾어 인사를 했다. 문득 웃음이 났다. <현해탄의 우정> 책 속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