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버지는 못 만났다. 체념하고 돌아가는 길, 내가 내렸던 천촌역이 저만치 동네 아래에 보인다. 동네 끄트머리 언덕, 아름다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들어올 때는 미처 못 보았던 글이 보인다. <하늘 마을에 새로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가지고 오신 것이 있으시거나, 놔두고 오신 것이 있으시면 모든 것 소멸시키셔야만 입주할 수 있습니다.> 멈춰 서서 안내판을 꼼꼼히 읽어본다. 관리실에 앉아계시던 아저씨가 나를 아는 체 웃으시며 나오신다.
“이제 돌아가시려고요?”
“녜.”
아직 입주가 안 된 멋진 집들에 대해서 물었다.
“이런 집은 비싸겠죠?”
“아닙니다. 비싸지 않습니다.”
“저 집은 굉장히 럭셔리하네요. 저 집은 그래도 많이 비쌀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똑같습니다.”
“그래요? 두 칸짜리 집과 저 큰집이 같다고요?”
“그렇습니다. 오시는 분마다 좋아하시는 타입이 다르더라고요. 큰 집을 원하시는 분, 조촐한 집을 원하시는 분, 어떤 집이든 그분들이 원하는 집에 입주할 수 있습니다. 단, 검열이 필요합니다. 게시판에 적힌 것처럼, 가지고 오는 것도, 놔 두고 오는 것도 없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소멸될 때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정자에 무리 지어 앉아계시는 분들을 봤다. 대부분 아무것도 지니고 계시지 않다. 그런데도 아직 대기하고 있다니, 궁금해서 물었다.
“저분들은 아무것도 안 가지고 계신데, 왜 아직 입주를 못하나요?”
“가지고 온 것은 없지만, 놔두고 온 것이 있기 때문이죠.”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얻고 갑니다. 언젠가 제가 올 때는 정말, 놔 두지도 말고, 가지고 오지도 말아야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럼 만날 분은 모두 만나신 거지요? 조심해서 가십시오.”
“아버지를 못 만났어요. 아버지는 이 동네에 안 계신가 봐요.”
말을 하는데 새삼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울먹였다.
“그래요~? 아.. 그렇다면....”
관리인 아저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시며 말씀하신다.
“그리운 마음만 갖고 계시면 어디선가 만나게 되실 겁니다.”
저 아래서 하얀 연기 뿜어내며 기차가 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관리인 아저씨가 맡아 놓으신 내 가방과 핸드폰을 돌려주시며 재촉하신다.
“서둘러 가셔야겠습니다. 돌아가는 기차는 저 기차뿐입니다.”
서둘러 기차역으로 갔다. 올 때처럼 플랫폼에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역이 있는지도 그 한 정거장 뒤에 천촌이 있는지도 모르나 보다. 내가 마을로 내려가면 알려줘야겠다. 서둘러 내려가 개찰구 앞에서 표를 찾았다. 아.. 표가 없다. 호주머니, 가방 안을 다 뒤져도 없다. 어디다 흘렸을까? 기차는 떠나려는 듯, 기적소리를 울리기 시작한다. 큰일 났다. 이대로 못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기차는 하루에 한 대만 운행을 한다. 어떻게 하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네댓 살 보이는 사내아이가 발소리도 사뿐하게 내 앞으로 오더니 표를 건넨다.
“어디서 찾았어? 고마워, 고마워, 너 아니면 큰일 날뻔했어. 이 난감한 상황에 날 도와주다니, 정말 고마워.”
아이의 키에 맞추어 사뿐 앉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진하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이는 흡족한 듯, 일어서더니 먼저 플랫폼으로 깡총거리며 들어간다. 꼬마도 이 기차를 타고 가나 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행복해진다.
기차를 탔다. 기차가 하늘 마을을 떠나고 있다. <<天村驛>> 플랫폼에 우뚝 세워져 있는 역명이 눈에 들어온다. 차창 밖으로 땅도 하늘도 하얀 동네가 지나가고 있다. 하얀 집들이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 같다. 평화롭다. 그들을 만나 절절이 가슴 아팠던 마음이 기차가 달리면서 점차 옅어져 간다.
어느새 하늘 아래 첫 정거장 기차역에 도착했다. 저녁이 어스름 오고 있다. 플랫폼을 돌아본다. 한가진 풍경이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은 역시 나뿐인가? 아, 앞 열차 칸에서 나에게 기차표를 찾아 건네주던 꼬맹이가 내린다.
“꼬맹아 고마웠어~~”
반가움에 손을 들었다. 꼬맹이도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소리 없이 웃는다. 아, 저 웃음, 나 어릴 때, 아주 어릴 때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웃던 그 웃음을 닮았다. 아이가 저쪽 플랫폼 끝으로 달려간다. 한쪽 다리가.. 조금 뒤뚱거린다.
아.. 내 아버지도 그랬는데.. 아.. 아버지..
문득, 하늘마을 관리인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 오른다. <그리운 마음만 갖고 계시면 어디선가 만나게 되실 거예요> 저쪽 플랫폼 끝에서 아이의 아버지인듯한 사람이 달려오는 아이를 덥석 안아 올린다. 아빠 품에 안긴 아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든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든다. 아 ~ 안녕.. 좋아 보이는구나. 부디 축복받으며 평생을 살거라.
누가 내 어깨를 살포시 잡는 것 같다. 누굴까.. 뒤를 돌아본다.
“해질녘이 되어서 날씨가 차가워지는데요”
낯선 할아버지가 나를 깨우신 거다.
“아, 제가 깜빡 졸았나 봐요. 햇살이 따뜻했었는데.. 벌써 이렇게 됐네요.”
할아버지는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이신가 보다. <하늘 아래 첫 정거장> 낡은 간판을 본다. 역사 귀퉁이에서 할아버지가 주위에 흩어져 있는 앙상한 가지들을 모아 태우고 있다. 나무 태우는 냄새가 참 좋다.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언니의 여권을 꺼냈다. 언니는 2년쯤 투병 생활을 했다. 병이 시작될 무렵, 연권만료가 되어서 새로 냈다. 병이 완치되면 여행을 다시 시작하리라, 그동안 못 해 봤던 여행을 맘껏 해 보리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 여권 새로 냈다.'
전화기 속으로 들렸던 언니 목소리.
'그래, 빨리 나아서 우리 여행 많이 가자.'
그런데.. 언니는 새 여권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지금도 미안하다. 언니가 투병하고 있을 때, 나만 여행을 다녀왔었다. 이 몹쓸 동생은.. 그때는 정말 생각이 짧았다. 깨달음과 후회는 뒤늦게 온다. 얼마나 서운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 아픔 때문인지, 미안함 때문인지 도장 한 번 찍히지 못한 새 여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천촌에서 본 언니의 평화로운 얼굴을 떠올렸다.
여권을 나무 태우는 불꽃 속으로 넣었다. 나무 태우는 냄새가 너무 좋다. 아.. 겨울 한낮의 꿈이 이리도 생생하고나. 그래도 너무 다들 잘 지내고 있구나. 그렇게 자신의 세계 속에 파묻혀 지내느라 소식이 없었구나. 남들은 떠난 사람들이 너무 자주 찾아온다 하던데, 나는 너무들 찾아오지 않아서, 그 새 나를 잊었나? 아니면 내가 너무 서운하고 못해주어서 마음이 돌아섰나, 자책하기도 했다. 흔히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있으니, 그렇게라도 위안으로 삼자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시간 속에서 부활을 위해 정화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저 먼 시간 속으로 떠나간 그들을 못 보내고 있는 것은 나였을 뿐, 내 마음속에 그들을 향한 죄송함, 미안함, 그리움에 점철된 내 상처를 못 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고 잊어야 할 일만 남았다.
그들은 모두 안녕들 하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