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별빛서점 09화

꽃마차

by 칠십 살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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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을까? 온통 하얀 건물만 있는 길모퉁이에 연분홍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저기는 뭘 하는 곳이지? 가깝게 다가가니 놀이터도 보인다. 유치원인가 보다. 넓은 창문은 투명하다. 얼굴을 창문 가까이 대고 안을 들여다본다. 서너 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다. 다른 방 창문을 들여다본다. 갓난아기들이 하얀 보자기에 싸여 누워있다. 한 방에는 하얀 수녀복을 입으신 보모님들이 계시고 한 방에는 회색 무명옷을 입으신 보살 보모님들이 계신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인가? 아니면 일들 하러 나가서 보모님들이 돌보고 계시는 중인가. 궁금해서 갓난아기들이 있는 창문을 똑똑 두들겼다. 소리를 들으셨다. 깜짝 놀라시며 보살님이 창가로 오신다. 안에 들리도록 큰 소라로 말했다.


“부모님이 안 계시는 아이들인가요?”


회색 옷을 입으신 보살 보모님이 대답하신다.


“이방에 있는 아이들은 이제 곧 부모님을 만나러 갈 아이들이에요.”

“저쪽 방 아이들은요?”

“그 방에 아이들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해요.”

“그렇군요. 아이들이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까지 돌보고 계시는군요.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그냥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가들을 보고 싶다.


“저 들어가서 아기들을 봐도 될까요?”


보살님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시며 대답하신다.


“여긴 아무나 못 들어와요. 순결한 영혼들만 잠들어 있어요. 이렇게 되기까지 억겁의 시간이 흘렀답니다. 무결점의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영혼들이죠. 그래서.. ”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온통 수선화로 장식된 꽃마차가 소리도 없이 들어와 문 앞에 선다. 어머나 ~ 저렇게 예쁜 꽃마차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지금껏 어린이 공원과 유원지에서 본 꽃마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애니메이션 영화 속의 디즈니랜드에서나 봤던 것 같다.


꽃마차에서 우아한 노인이 내린다. 이 동네에 들어와서 여태껏 보아 온 것과 다른 붉은색과 푸른색을 띤 한복을 입으셨다. 노인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방금 보모님에게서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그녀에게서 범접하지 못할 아우라를 본다. 황홀감에 빠져 넋 놓고 내 눈은 여인을 따라간다. 창문 너머에서는 두 보살 보모님이 한 아기씩 안고서 그녀를 영접하고 있다.


아, 이 상황을 이해했다. 노인은 억겁의 시간을 거쳐 정화된 순수한 영혼을 데리러 온 것이다. 그녀는 사랑과 자비와 위엄의 자태로 아가를 받아 품 안에 품고서 꽃마차로 간다. 아가가 새 삶을 시작할 세상으로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구나, 내 가슴이 콩닥콩닥 쉼 없이 뛴다. 두 아가를 태운 꽃마차가 소리 없이 떠나간다. 아.. 수선화 꽃마차.


지금이 겨울이구나. 수선화의 꽃말을 생각해 냈다. 자존심, 고결, 신비. 저 아가들은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을 아끼며 고결한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겠구나. 꽃마차가 떠나고 난 후, 다시 창문 너머 아기들을 본다. 아직도 내가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린 보살님이 날 보고 빙긋 웃으신다. 주책없이 말이 걸고 싶다.


“저 아가들은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지요? 얼마나 좋을까요? 부모님이 좋은 분이시겠죠? 좋은 부모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보살님은 그냥 미소만 지으신다. 순간, 문득 궁금했다.


“보살님, 혹시 부모님이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닌지요?”


그 말에 순간 보살님의 표정에서 미세한 변화를 본 듯했다. 그러나, 이내 잔잔한 미소만 보내실 뿐이다. 순간, 아뿔싸! 내가 이 신성한 곳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구나. 갑자기 두려워진다. 늙으면 오지랖이 넓어져 어떤 일에나 자꾸 입을 대려 한다. 이곳을 떠나야겠다. 창문에 대고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보살님, 수녀님, 수고 많이 하세요.”


유치원을 떠나 다시 길을 걸으며 막 떠난 아가와 꽃마차를 생각했다. 아가들은 어떤 부모님을 만나게 될까, 아가들을 만나기 위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공들여 준비하고 있을 부모를 생각한다. 그들이 만났을 때의 기쁨을 생각하니, 행복과 아픔이 섞인 묘한 감정이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유치원을 떠나 한참을 걸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못 만났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이 동네 안 사시나 보다. 못 만나고 돌아간다 생각하니, 간절하고 아쉬운 마음만 자꾸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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