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꽂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겨울이 녹으면 오는 것들에 대하여

by 동그라미

*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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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제목 참 예쁘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니.

언뜻 보았을 때는 낯 간지러운 고백이라도 들은 양 설레는 제목이었다.


나는 책에서 마음에 드는 점이 어느 한 곳이라도 발견되면 바로 읽기 시작하는데 이 책의 시작은 제목이었다.


하지만 처음 펼친 책의 분위기는 제목에서 예상했던 산뜻하고 간질거리는 기분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서울에서 미술 강사로 일하던 해원이 학원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지쳐 고향인 북현리에 내려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해원의 이모인 명여는 서울로 다시 돌아갈 기약 없이 집으로 돌아온 해원을 달가워 하지 않고 다시 펜션을 열어 보려는 혜원의 시도에도 얼굴을 찡그린다. 여기에 오랫동안 방치된 펜션 호두하우스까지 문제가 생기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을 반기는 건 강아지 군밤이와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하라는 옆집의 동창생 은섭 밖에 없어 보인다. 게다가 이모는 혜원에게 뭔가를 숨기는 눈치다.


# 01 굿나잇 책방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일하고 쉬고, 그리고 잘 자면 그게 좋은 인생이니까.'

해원의 옆집 동창생 은섭은 책방을 운영한다. 이름은 굿나잇 책방. 굿나잇이 인생의 오랜 화두였다던 은섭이 운영하는 이 책방은 마을의 사랑방이다. 할아버지와 둘이 사는 승호, 약국집 딸 현지, 굿나잇 책방의 우수 고객 수정, 조명을 팔러 왔다가 북 클럽의 회원이 된 근상. 여기에 책방 매니저 직함을 단 해원까지. 나이도 성격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였다.


너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일까. 북 클럽이라는 목적과 달리 책 이야기와 글 쓰기는 회원들의 수다에 밀려 저 뒤편으로 사라지기 일쑤지만. 온기를 찾아 모인 사람들답게 먼저 손 내밀지 않아도 서로를 나눠주는 일에 열심히다. 승호의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승호와 그런 승호와 현실적인 걱정들에 휘청이시는 할아버지를 챙긴 건 책방 회원들이었다.

이때 혼자 남은 승호를 데려온 해원이 승호가 좋아하는 책에서 나온 <눈물차>를 끓여 마시는데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 슬플 때 흘린 눈물을 모아 만든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슬픔이 조금 누그러진다는 주인공처럼 해원과 승호는 눈물 대신 슬픈 기억들을 하나씩 넣어 가면서 차를 끓인다. 지금까지 들은 슬픔을 가라 앉히는 방법 중 가장 따뜻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슬픔이 찾아오는 날이면 슬픈 일들은 재료 삼아 한 가득 넣고 차를 끓여 마셔야지. 나도 슬픔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하나 배운 셈이다.


다정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굿나잇 책방을 들여다보면서 순간순간 외로웠을 은섭이 만든 보금자리라 이렇게 다정할 수 있는 게 맞겠지 싶었다. 그럼 그런 은섭의 보금자리에 찾아온 사람들도 온기를 쫓아 온 걸까.


사족 하나,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굿나잇 책방을 열었다던 은섭. 그런 은섭을 태생이 느긋한 녀석이라고 표현한 동창 장우는 학창 시절 그런 은섭에게 열등감 비슷한 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은섭에 비해 걱정이 먼저 발을 떼 버려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내가 답답했다. 너무 많은 생각에 잡아먹힌 나는 그 자리 그대로 멈춰 버렸는데 말이야. 안 맞는다고 하면서도 가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런 은섭에게 위로를 받았다.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 수도 있구나, 어쩌면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걱정은 기우일 뿐이고 진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생각해도 늦지 않겠구나. 그런 저런 것들. 이제는 나도 망설이기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 아마 더 늦으면 진짜 겁쟁이가 되고 말겠지. 그런 용기를 보태준 은섭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 02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학창 시절, 해원은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 가장 원치 않았던 방법으로 상처를 받았다. 시간이 지났으니 희미해질 법도 하건만 동창회 날 마주친 친구 보영의 모습에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날카롭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보영에 해원은 날씨 핑계를 대며 어물쩍 넘기다 결국 날씨 좋은 어느 날, 보영을 만나러 간다.


미처 짓지 못한 매듭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나부낀다. 계속 마음을 스치기에 언젠가 매듭을 지어야 한다. 하지만 해원과 보영의 매듭은 특이해서 여러 번 되풀어 읽었다. 속 시원히 오해를 푼 게 아니다. 그렇다고 제삼자의 시선으로 본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로 하고 싶은 말만 전한 채 헤어졌다. 벌어진 틈은 그렇게 묶였다. 어쩌면 해원과 보영의 응어리는 그때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말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원망스러웠지만 그에 앞서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을 못 한 것. 못다 한 본인의 말에 갇혀 살았던 사람들은 그제야 서로 웃을 준비가 되었나 보다.


# 03 오두막

굿나잇 책방보다 앞선 은섭의 또 다른 공간. 북현리의 숲에는 오두막이 있다. 은섭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린 은섭과 함께 살던 공간이다. 은섭은 새로운 부모님을 만났고 그 분들은 은섭에게 한 없이 다정하셨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은 이 오두막에 남아 있었나 보다.


해원이 떠나기 전에 했던 말들로 마음이 무거워졌을 때 은섭은 오두막을 찾았다. 며칠 정도 가 있겠다는 짧은 쪽지만 남긴 채로. 은섭이 상처를 받았을 때 잠시 세상과 떨어져 있고 싶단 생각이 들면 찾던 곳. 소년이 어른이 될 만큼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촌 형의 존재처럼 어딘가에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 때, 내 것이라고 분명하게 하나 남아 있는 이 공간이 그에게는 소중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두막을 보면서 왜 은섭이 이곳에 오는지 알 것 같다던 해원의 말이 반가웠다. 은섭의 온전한 은섭의 세상이 되어줄 사람이 나타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해원과 함께하는 곳이 은섭의 새로운 오두막이 되겠지. 숲 속에 있어 머무는 사람이 없을 때면 쉽게 온기를 잃었던 전 오두막과 달리 은섭의 새로운 오두막은 항상 훈훈한 온기가 돌 것만 같다. 조금 더 따뜻해진 은섭의 세상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 04 나뭇잎 소설

소설가답게 명여의 이야기는 글이다. 이번에는 독자가 읽기를 원치 않았다는 게 흠이었지만. 나뭇잎 소설은 명여가 겨울을 보내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 뜨릴 준비를 해야 하는 걸 의미하는 듯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걸린 소설의 끝이 왔다.

조카는 원망을 내비쳤고 명여는 담담히 자신의 죄를 시인했다. 죄책감과 미안함과 후회 같은 감정들이 찌그러져 한데 눌어붙어 있었다. 실명할 수도 있다는 눈보다도 더 망가진 심정으로 무거운 삶을 살았겠구나 어렴풋이 추측만 될 뿐이다. 모든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냥, 해원이 명여에게 편지로 전했던 말처럼 언젠가 해원과 해원의 엄마, 명여 셋이 모여 그동안 묵혀 뒀던 빨래를 하고 슬픈 기억들을 넣어 눈물차를 끓여 마시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이 녹으면 오는 것들에 대하여

북현리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겨울을 겪고 있었다. 해원의 겨울은 학창 시절 아물지 못한 상처, 명여의 겨울은 조카에게 털어놓지 못한 응어리였으며 은섭의 겨울은 어린 시절 끝자락이었다. 겨울을 품고 있어 봄을 맞지 못한 사람들은 조그마한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괴로워했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지만 그건 잘 아문 상처일 때의 말이고. 받았을 때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상처는 아물지 못해 언제든 다시 곪는다.


그걸 알기에 읽을 때 아프면서도 북현리 주민들이 속 이야기를 꺼내는 게 반가웠다. 당장의 겨울은 춥고 시릴 지라도 그 눈 속을 버티고 오는 봄이 얼마나 상냥한지 아니까. 힘든 시간을 버틴 그들이 겨울이 녹으면 오는 것들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독후감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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