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동자가 잊혀질까 두려워 복고풍 편지를 쓰고 싶네
10월. 일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실 나는 안다. 일하기 좋은 계절이 놀기 좋은 계절이란걸.
일이 잘 되는 건 이유가 있다. 바야흐로 10월이다.
40여 년 전에 쓴 법정의 에세이를 읽었다. 가을을 주제로 사색을 엿본다. 얼마 전에 출간된 글처럼 가을이 매만져진다.
에세이를 읽게 된 이유가 있었다.
오후에 버스를 타고 터덜터덜 낯선 동네를 가는데, 문득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재즈였다가 샹송이었다가, 오래된 가요였다가.
초행길과 잘 어울렸다. 예쁜 상점들과 카페들이 나란히 위치한 동네였다.
나는 노래를 따라불렀다.
문득 옛 사람이 그리워 편지를 쓰다가도, 혼자라도 불만 없다며 야호 부르짖기도 하고,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거실에 누워 졸린 눈 비벼가며 하늘을 만끽하기도 하고.
라디오에선 가을을 보내는 다양한 국면을 소개해준다.
문득 나는 느꼈다. 10월이 되면 사람들은 분야를 뛰어너머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구나.
가수, 작사가, 애청가들에게서 시인의 감수성이 묻어나온다.
노랗게 변해가는 나뭇잎을 보며, 나무가 만든 궁륭 밑으로 지나갔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 마음은 나 혼자만의 정서가 아니다. 아마도 그 오래, 이 길을 걸었던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했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도 떠올랐다.
그 길은 내가 아는 작가가 사는 길이기도 했다. 오래되서 낡았지만 풍요로운 서재로 향하는 길이기도 했다.
근황 이야기하다가 지금은 절판된 책을 빌리러 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작가는 당황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뭘 빌릴려고 그래. 그냥 사요!"
절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