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유가 없이도 일상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던 그 시기가 꽤 그립다. 애써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내가 가는 곳에 친구들도 함께 있고, 친구들이 있는 곳에 나도 함께 있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만날 약속을 따로 잡지 않아도 하나둘씩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나서는 것처럼, 자석에 끌려가는 것처럼 와글와글 모여들던 때가 있었는데,
그들의 하루에 대해서 내가 내 하루만큼이나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들의 고민에 대해서 내 고민만큼이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 하루에 대해서 100장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처럼 낱낱이 이야기하고, 내 고민에 대해서 부끄러울 것도, 쪽팔릴 것도 없이 주절주절 읊어대던 때가 있었는데,
제발 이제는 집에 좀 가라고 서로가 서로의 등을 떠밀어도 내일에 대한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찰떡처럼 붙어서 내일을 이야기하고, 언젠가를 얘기하던, 철없이 재미있던 때가 있었는데,
조금은 따분한 시절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몇 주 전부터 약속을 잡고, 그렇게 힘들게 잡은 약속에서도 꼭 무슨 일이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몇 알만 쏙쏙 빼먹은 옥수수처럼 빈자리가 있는 채로 만나게 되었다.
미처 말하지 못했던 일상들은 "그래, 잘 지냈으면 됐지 뭐"정도로 둥글둥글하게 갈무리가 되고,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나 고민들도 한 보따리는 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혹시 누군가에게 짐을 더할까 싶어서 꽁꽁 싸매게 된다. 여전히 철없이 웃고, 떠들고, 재밌지만 적당한 시간에는 일어나게 되었고, 떠나는 걸음에 질척임도 많이 줄었다.
일상적으로 친구들을 만나던, 내일에 대한 부담 없이 오늘을 열심히 질척이던 그런 일상이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