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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Aug 03. 2020

동대문 연대기-16.그들만이 리그(5)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







아침 출근 시간이 넘도록 실장님은 안 오셨다. 기다리다 사무실을 나왔다. 근처 메인 봉제 공장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갔다. 실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 하면 돈 못 받아요. 사장님께서 법적으로 

가만있지 않으시겠답니다!"




무단 퇴사로 인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하셨다. 회사에서 늘 행해졌던 하대와 멸시. 그렇다고 

해도 내가 말 한 퇴사 기간을 지키고 싶어 참아 왔다. 하지만 버티질 못했다. 인수인계 기간을 미리 

말씀드리고 5주를 하다 나왔어도 , 그것은 아무런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다. 실장님은 내게 급여를 

포기하도록 유도했다.




"급여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장님, 더 이상의 폭언을 견딜 수 없어 그만둡니다."




나를 정신적으로 학대한 그녀에게 처음으로 내 의지를 들어낸 말이었다. 내가 급여를 포기하지 않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장님과 말해 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지금 이렇게 나간다고 나에게 타격을 입 힐 수 있다고 생각 하나 보지?! 천만에, 내 능력을 과소평가

했어!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실장님께서는 자신의 악의적인 행동과 모함, 그리고 폭언으로 말미암아 나를 억압한 사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본인의 비위를 거스르는 행동으로 단정 지을 뿐이었다. 








"폭언이라고? 웃기시네!"


사장님의 문자였다. 이어 내가 매일 그렸던 샘플 작업지시서를 놓고 가지 않았다며 절도라고 했다.

사무실 안에 실장님이나 사장님이 있을 때 돌려놓지 않으면, 나를 고소하겠다고 하셨다. 내 짐 속에 

섞인 작업지시서는 컨펌이 안된 실패작이었다. 절도라니 당치도 않는 말이다. 하지만 급여를 받고

일하는 중에 그린 작업지시서이니, 실패작이라도 원하신다면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로

사무실이 있는 답십리로 갔다. 실장님이 계셨고, 작업지시서 드렸다. 내게 가긴 어딜 가냐며 강하게

몸을 붙들었다. 



"더 이상 드릴 말씀 없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이후 사장님은 나를  조롱하는 문자를 보내셨다. 답하지 않았다. 






다음날 멘토로 생각하는 원단업체 사장님을 찾아뵈었다. 내게 지금 당장 노동부에 가서 상담을 

받으라고 하셨다. 신당역에서 가장 가까운 노동부를 검색하고 을지로 입구 3가 역에서 내렸다. 

서울 고용노동부 본청이 있었다. 상담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취급받는 걸 가만히 있었죠? 진정 넣으세요. 이런 사람들은 돈 안 줘요

그리고 메모해 드릴 테니 가지고 여기로 가세요. 큰길 대각선 방향에 있어요."



고층빌딩 사이 대각선 방향엔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었다.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모든 기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상담하신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말은, 왜 그동안 한마디 저항도 안 하고 당하고

만 있었냐고 했다. 30대 중반, 늦은 나이에 시작한 디자이너의  설자리가 많지 않은 현실이 두려

웠다. 시장에 와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해고와 권고사직을 겪었다. 그게 아니면 옷을  할 수 없는 

곳이라 나와야 했다. 연이은 불행에 내겐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좀먹어도 버

텨야 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병(病) 들었다.



씻을 기력도 없었다. 허리에서 다리로 점점 통증이 강해지며 내려왔다. 움직일 수 없어서 그대로

있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에 사장님이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  







나로 인해 옷이 잘못 나왔다는 사장님의 문자. 시계 주머니 부분을 워싱 후 뜯어내고 리벳을 달아야 

하는데, 완성 작업지시서에 뜯어내라는 표시가 없어서 사고가 났다는 거였다. 나를 조롱하며 무단 

퇴사한 사람이 끼친 손해를 회사가 짊어질 순 없다고 했다. 또다시 급여를 포기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증거로 잘못 나왔다는 옷과 견본 사진 완성 공장 관계자와 실장님이 대화한 메시지 내용을 

보내오셨다. 내가 그렸다는 작업지시서 사진도 첨부했는데 여기엔 문제가 있었다.



 상단에 한글로 적힌 글씨를 잘라서 보내신 거다. 해당 옷은 실장님의 디자인이었다. 완성 작업

지시서는 누구의 디자인인지 상관없이 그렸다. 단 뭐든지 손으로 그렸던  회사의 방침 중 완성 

작업지시서는 일부러 못 그려야 했다. 그 이유는 혹시 다른 업체에서 완성 공장에 왔다가 작업 

지시서를 보고 디자인을 카피할까 우려하셨던 사장님의 지시사항이었다. 한마디로 발로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만 보고는 둘 중 누가 그린 건지 알 수 없다. 상단에 한글로 된 글씨를 봐

야 했다. 그런데 그 부분을 가리고 보내셨다. 해당 상품은 신상품 첫 출고다. 워싱 처에서 완성 

공장으로 갈 때  견본 옷이 함께 간다. 리오더 상품도 아닌 첫 출시 상품을 작업할 때 견본과 작

업 지시서를 비교하고 진행한다. 상이하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곧바로 연락이 온다. 그런데 

실장님은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셨고, 공장 관계자는 작업지시서 잘못인 것 같다는 말을 하

고 있었다. 





잘못 출고돼서 손해 봤다는 물량의 금액은 하필이면 내가 받을 월급과 몇만 원 차이 나는 비슷한 

액수였다. 거짓과 모함으로 점철된 회사 내부 상황을 겪어본 나로선 사장님이 보내신 문자만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시비비를 따져가며 생각한 것은 그로부터 수개월이 

흐른 뒤였다. 당시에는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놀란 마음이 

진정 되지 않았다. 이미 회사를 다니며 억압받는데 익숙한 나는 스스로를 지킬 말과 글을 떠올릴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토요일에  일을 배우러 나갔던 봉제공장 사장님께서 이를 아시고는 지인에게 상담을 받아 보라고 

하셨다.  법무법인에 계셨다. 이전에는 의류회사에 소속되어  대기업은 물론 시장 디자이너의 생리

를 잘 아는 분이었다. 내가 확인할 수 없는 그들이 말하는 실수로 나를 협박해 온다면 끌려다니지 말

고, 당당히 소송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겐 모든 정황 증거가 있었고 회사가 근로 기준법을 위반한 

것만 3가지. 임금체불까지 할 경우 4가지 사항에 해당된다. 또한 나로 인해 발생했다는 그 피해액을 

내가 받아야 할 급여에서 상계할 수 없다는 거였다. 노동부 상담에서도 동일한 말을 들었다. 이어서 

제날짜에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라고 하셨다.






데님을 시작하면서 나는 종종 돈을 떼였다. 그것은 내가 데님을 알고 가장 좋아했던 공간에서도 

벌어졌다. 4대 보험과 수습 기간을 명목으로 오랫동안  급여에서 차감했다. 하지만 수습 기간이 

종료돼도 약속했던 급여와 달랐고 4대 보험은 계속 미등록 상태였다. 나중엔 기다리다가 조심스

럽게 근거 자료와 함께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직원의 실수였다며 내게 사과하셨고 차감했던 돈을 

돌려주셨다. 다른 곳에서는 돈이 없다며 두 달이 지나 급여 일부만 주거나, 아예 돈을 못 받았다. 

패션계의 열정 페이는 익히 들어 봤지만 애초에 약속된 금액의 급여가 안 지켜지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기 전 다녔던 유니클로는 마지막 급여 지급 이후 14일 이내 퇴직

금이 들어왔다. 이후엔 국가에서 4대 보험으로 급여에서 징수했던 세금의 환급금까지 돌려주었다. 

디자인을 업으로 삼게 된 후 입사한 회사는 패션 계통이라 할지라도 규모가 작았기에 단 하나만을 

바랬다. 그저 급여를 제 날짜에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았다.



이전에 돈을 떼였을 때조차 노동부에 가본 적이 없다. 늦게 시작한 일에 대한 비싼 수험료라고 생

각도 했다.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들은 내 정신을 갉아먹었다. 피폐해진 마음을 수없이 난도질

했다. 


제날짜에 급여는 입금되지 않았다. 다음날 현충일 하루를 더 기다렸다. 역시 급여는 들어오지 않

았다. 사흗날, 내 인생 최초의 노동부 진정서가 작성되었다.







회사 화장실에 놓았던 레몬그라스 방향제.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가 걷히고 나면 원래의

암모니아 냄새가 역하게 올라온다. 애써 마주하길 거부했던 현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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