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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Aug 05. 2020

멈춰 버린 시간(1)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디스크는 한번 손상되면 완벽한 재생이 불가능하다. 수액이 몸 안에서 흡수돼  통증이 없어지는 경우

가 있다. 하지만 매우 드물고 치료가 된 게 아니라  더 이상 신경을 자극하지 않을 뿐이다.  몸에 중심

인 척추는 늘 압력을 받게 되고 한번 터진 적 있는 디스크는 수액이 점점 빠져나와 부피가 줄어들고

그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외관상 티가 나는 병이 아니다. 겉 보기에 멀쩡해 직장을 다니며 투병

하는 환우들은 '나이롱환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속으로 느끼는 방사통의 고통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

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차라리 통증이 오는 신체 부위를 자르고 싶었다는 투병기가 차고 넘친다. 이러한 환자의 고통을 악

이용한 의료 기관도 더러 있다. 우선 비수술적 약물이나 주사 치료를 시도하지 않고 곧바로 수술을

한다. 또는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에게 비수술로 나을 수 있다며 값비싼 약과 치료를  권유한다. 여

기에 큰 문제가 있다. 수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비수술을 고집하다 시기를 놓쳐 병을 키운다. 뒤늦게

수술해서 후유 장애가 남는 경우다.



한때 무분별한 수술이 성행했던 일부를 매스컴에서 크게 다뤘다.이로 인해  '허리는 수술하면 안 된

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게 됐다. 디스크는 MRI 상태와 더불어 환자가 느끼는 고

통의 단계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척도가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비수술적 치료와 시술 그리고  한방 치료는 내게 한시적 통증만 경감시킬 뿐이었다. 수술을 고민 하

게 되었다. 3차 의료기관 세 군데에 진료예약을 했다. 다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기 위해서다. 전

국의 환자가 몰리는 대형 병원답게 빠른 예약이 어려웠다. 특히나 초진은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디스크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는 누워 있을 때다. 중력의 영향을 제일 덜 받기 때문이다. 강도를

높인 진통제를 먹고 침상 안정을 하며 내내 누워 지냈다. 약기운에 통증이 덜 느껴지면 걷기 운동

을 했다. 내 삶에 이런 시간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남들은 순탄하게 잘 만 살아가는데  내게만 불

행이 연속으로 찾아오는 듯했다. 내 심신을 갉아먹은 직장 내 괴롭힘, 정신적 학대와 가스 라이팅은

그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이름 모를 어떤 사람의 안타까운 일이라고 치부했다. 그런데 그

일이 나에게 벌어지고 보니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 피해자의 심경이 십분 이해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이전 직장을 나오고 얼마 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거래처를 통해 내가 회사를 나온 이후의 일을 알게 되었다.  인수인계 기간 면접을 보았던 남자분이

바로 다음 월요일부터 출근했으며, 사장님과 실장님은 주변에 내가 실수를 하고 회사를 나갔다며

안 좋은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것이다.  



" 그건 기울어진 운동장이에요."



전 직장 사장님께서 거래처와 통화하실 때 주로 사용하던 이 말은, 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수인

계 기간을 원하는 사람이 뽑힐 때까지 무한 연장을 원하는 회사였다. 사장님과 실장님의 시장 안에서

의 영향력을 무기로 나를 협박했다. 업계에 안 좋은 평판을 만들어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버린다고 했

다. 엄연히 취업 방해 행위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서 내겐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페어플레

이는 올림픽에서만 존재하는 정신이었다.



첫 번째 예약한 대학병원의 진료를 받았다. 수술을 권유했지만 대학 병원의 특성상 긴급 수술이 아

닌 이상 한 달간 진통제를 먹으며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다. 수술을 각오했지만 실제 하려고 마음 먹

으니 걱정이 밀려왔다. 다음 달 예정된 다른 병원의 소견을 종합해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2019년 10월 중순의 오후, 전 직장 사장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장님의 전화와 문자는 내용을 떠나 이미 그 자체가 내겐 공포였다. 발신자의 이름이 확인된

순간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가슴이 조여 왔다.



"미안한 마음에 문자 넣는다.  네가 날 돈 안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서 그런

거야.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 시간 날 때 언제든 보자."




정말이지 뜻밖의 내용이었다. 회사를 나오고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사과의

내용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질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의도인지 따질 겨를 없이 그 자체가 고마웠다.

그동안 온갖 조롱과 욕설을 퍼붓던 모습을 생각하면 감히 바랄 수 없는 행동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먼저 사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받아들였고 답장을 했다. 그리고 내게  먼저

사과를 할 분이라면, 회사가 말하는 확인되지 않는 그 실수에  정말 내 과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이 들었다. 나로 인한 피해를 봤다는 부분에 사과를 했다. 더불어 회사에 있는 동안 디자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함을 전했다. 이런 대화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님의 모함으로 내가 뒤집어쓴 몇 가지에 대한 해명을 했다. 퇴사를 예정한 상태라 소명

하지 않고 덮어 둔 부분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더 큰 피해로 나에게 돌아왔고 결과적으로 주변에도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실장, 말 안 해도 어떤 사람인지 다 알아. 내가 실장의 공석이 두려워 너를 헤아리지 못했다.

미안하다. 앞으로 너의 삶이 잘 되길 바란다. 화이팅!"




실장님의 최대의 무기는 사장님께 퇴사를 언급하는 거였다. 회사에서 가장 오래 일하며  누구

보다 그 독특한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분이었다. 요즘 시장 안에서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실장

님의 후임으로 올 만한 사람이 없었다. 디자이너가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그 많은 공정과 시장에 

소문난 회사의 참모습은 거래처와 디자이너 모두가 꺼렸다. 실장님은  '시장 안에 이 일을 할 사람

은 나밖에 없어'라는 것을 최대한 이용한 분이었다. 그 어떤 잘못을 해도 본인을 위협할 문제가 되

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에 일했던 그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탓하고 뒤집어 씌울 뿐이었다.






친한 지인은 사장님의 사과 문자를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니, 본인도 실 괴롭혀 놓고 이제 와서 실장 뒤로 숨는 거야? 어이없다. 나 같으면 그 문자에

대답 안 해. 무슨  꿍꿍이가 있어 그럴지 누가 아니? 그걸 또 답장하는 너를 호구라고 생각하겠지."



친구의 말대로  혹시 모를 의도가 있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일부분이라도 내게 먼저 사과를 했

다는 것이 중요했다. 사장님의 이 문자 이후 나는 신경 안정제를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괴로운 마

음이 조금  사그라짐을 느꼈다. 하지만 내 시간은 이미 멈춰버린 상태였다. 다들 미래를 향해 살아

가는데 혼자만 정체된 시간 안에 갇혀 버렸다. 일하다  망가진 몸과 마음이 내 삶의 행로를  암흑으

로 만든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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