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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Aug 06. 2020

멈춰버린 시간(2)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   병원으로 가는 길의 구름다리  >






살아갈 길을 잃고 남겨진 건 다친 몸이다. 나를 돌보지 못 한 대가는 하루 24시간을 통증과 함께 무의

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2019년을 다 보내도록 내 몸과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못했다. 3차 병원 세

곳에서 모두 수술을 권유했다. 수술을 확정하기 전 마지막으로 신경차단술을 받았다. 스테로이드 약

물을 디스크가 터진 병변 부위에 직접적으로 주사하여 염증을 가라앉히는 시술이다. 디스크가 터지

지 않은 팽윤이나 발병 초기 단계에 효과가 제일 크다. 하지만 내 경우  터진 디스크가 신경을 많이

누르고 있어 크게 효과를 보진 못 했다. 신경이 지나가는 척추의 공간이 선천적으로 비좁아 눌림이

더 심한 케이스라고 했다. 이전에 두 차례 시술을 받은 적이 있지만  약물의 효과는 회를 거듭할수록

통증을 잠재우기엔 미흡했다.





어느덧  2020년 새해가 되었다. 공상과학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단골 소재. 2000년대 하고도 20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90년대에 떠올렸던 미래의 이 시간엔,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수중도시 안에 살

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 머나먼 세대의 이야기로 확인되었다. 그 대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이 창궐했다.  1월 외래 진료 시 병원 안엔 '중국발 정체불명 폐렴'이

라며 외국 체류 이력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달 말쯤 되어 우한 지역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삽시간에 퍼졌다. 그리고 전 세계로 확산되자 국제기구에서 '코로나 19'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의료 기기상에서 한 박스에 100장이 들은 덴탈 마스크를 며칠 전 5,000원에 구입했다. 그런데 그 가격

이 10배 넘게 뛰었다. 사스와 메르스 등의 전염병과 비교했을 때도 현재 감염의 파급력이 비교할 수 없

을 정도로 거셌다.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진통제와 시술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를 느꼈다. 수술을 염두 하긴 했지만, 가능하다면 하고

싶지 않았다.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두었던 수술이 임박했음을 몸으로 느꼈다. 터진 디스크 수액이 몸

안에 흡수되어 자연 치유된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내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위중한 상태로 인해 원

래 내원 예정일보다 앞당겨 진료를 봤다. 수술 날짜를 잡고 가는 길. 병원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는데 눈이 내렸다. 겉으론 멀쩡한 내 몸속은 통증으로 저려오고, 갑작스러운 전염병에 전 세계는 팬

데믹 상태로 신음하고 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풀밭과 잔잔한 강물을 바라보았다. 잠시나마 내

적, 외적 패닉 상태가 잠든 순간이었다.






<   2019년 병원 로비에 장식되었던  크리스마스트리  >





병원을 내 집인 양 드나들다 보니  분기별 달라지는 인테리어에 자연스레 더 눈이 갔다. 특히 새해를

앞둔 12월. 연말이다 보니  크리스마스트리가 빠질 수 없다. 그중 신경차단술을 받기 위해 당일 수

술 센터에 갔을 때 로비에서 보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초록색 나뭇잎 색깔이 보이지 않을 정

도로  촘촘히 새빨간 구슬 장식을 나선형으로 모아 장식했다. 여기에 은색 구슬과 흰색 눈 결정 모양

을 달았다. 또 작은 황금색 불빛 전구를 흩어 놓고는  꼭대기엔 큰 별 모양이 빛났다. 이제껏 병원에서

본 트리 중 가장 크고 화려했다. 장식 앞에는 핑크색 벤치가 있었다. 'happy new year'라고 쓰인 문구

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새해를 기다리면 누구나 희망찬 미래를 먼저 떠 올리게 된다. 올

해가 힘들었다면 내년에는 좋아질 거라고. 나는 그 벤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

며 사진과 함께 눈에 담았다.  매해 듣던 그 말이 새해엔 진실로 내게 이뤄지길 바라며.






1월 1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불리며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축하했다.

하지만 내게 새해는 해피하지 않았다. 통증은 더 심해졌고 지난해의 안 좋은 기억은 여전히 마음 안에

자리 잡아 힘들었다. 수술 날짜를 잡았다. 발목에 마비가 간헐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완전한 마비가 오기

전에 수술을 해야 했다. 먼저 예약한 병원보다 더 빨리 수술할 수 있는 2차 병원을 방문했다. 수술 일정을

잡고 나머지 타 병원의 예약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고  수술 날짜 만을 기다리

고 있었다. 그런데 수술을 하기로 한 병원에서 코로나 19 전염병의 확진자가 나왔다. 원무과에서는 국가의

병원 폐쇄 결정으로 수술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했다. 수술을 사흘 남기고 벌어진 일이었다. 병원 관계자의

확진자 판정은 다른 의료기관의 방역 강화에  강도를 높였다. 그 일환의 첫 번째가 해당 병원에 다녀온 이력

이 있는 사람을 추려 내는 것이다. 많은 병원이 그것 하나로 병원 내원을 거부했다.





운이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가 없었다. 병원이 폐쇄되어 수술을 못 받다니 상상도 못 해 봤다. 안 좋은 일

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이어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이번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

했다. 수차례 전화 후 이전에 외래를 받은 내역이 있는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검사를 받고 진료

를 예약하고 다시 2주 자가 격리를 했다. 다시 내원한 병원에서 이틀 뒤 수술하자는 확답을 받았다. 원래 몇

개월을 기본적으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전국의 환자가 몰리는 의사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코로나 19의 지방

확산으로 위험 지역으로  분리된 환자들의 일정이 취소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빠른 수술 기회가 찾아왔다.





폐쇄된 병원의 주치의 선생님과 간호사님께서는 내 상황을 안타까워하셨다. 수술을 앞두고 타 병원에서

거부하자, 의료 혜택의 부당함이 없도록 함께 애써 주셨다. 추후에 인사드리러 방문했을 때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내게 전화로 수술 예정인 병원의 이름을 물어보신 적이 있다. 그 후 병원에 직접 전화하셔서 위중한

환자이니 신속한 수술을 해 주십사 부탁을 하셨던 거였다. 계속된 삶의 악재 속에 새해의 희망과 같은 위로

는 움추린 마음속 한 켠을 지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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