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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Apr 27. 2021

든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제가 좋아서 한 일입니다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고맙다, 고생한다, 대단하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많이 해주는 말이기도 하고, 친한 지인들도 그런 말을 자주 하기도 합니다.


내가 좋아서 했던 직장 생활입니다.

내 능력으로 돈을 버는 것도 좋았고,

제가 하는 일이 보람되고 성취감도 있어서 참 좋았거든요.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내 삶을 개척해가는 과정도 좋았고

능력을 인정받는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는 동안  든든했다고 합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자의 반 타의 반 퇴직을 하면서 삶의 변화를 맞이한 남편이 하는 말입니다.

꾸준하게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해줘서 그 든든함으로 퇴직할 수 있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본인의 수입이 없을 경우 잠시라도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함이 필요했나 봅니다.

그 든든함으로 퇴사의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었고 과감하게 결정할 수도 있었다고.

그때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둬도 된다고 허락을 했을까요? 저도 참 바보입니다.



항상 고마웠다고 합니다.

아이들 어릴 때부터 성장한 지금까지 서툴지만 남에게 맡기지 않고 다 해낸 집안일,

저는 돈 버는 일보다 집안일이 더 힘든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참 열심히 했습니다.

흔히들 말하지요, 최선을 다했다고. 맞습니다. 저는 집안일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치우고.... 집안일은 제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일입니다.

바깥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분들  정말 존경해요.


얼마나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을까요?  제철 음식을 제철에 제대로 한 번이나 먹어봤을까요?

정말 미안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고마웠다고 말해줘서 제가 더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젊은 시절에 함께 애쓰며 노력하며 살다 보면 나이 들어 좋은 날 올 것이라고 믿으며

고생스러워도 조금 더 직장 생활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대하니 저의 직장 생활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큰가 봅니다.

좋아서 한 직장 생활을 평생 고생한 것으로 보는 걸까요?



세월이 지나고 보니,

몸이 아프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겨 자꾸 힘든 상황이 생깁니다.

모든 것이 돈을 벌어야 하는 직장 생활을 오랫동안 하게 만든 것이 그저 미안한가 봅니다.  

제가 좋아서 한 것인데도 말이지요.


든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찡합니다.

아니다 괜찮다 원하는 일이었다고 말해도 그것이 아닌가 봅니다.










몸이 아픈 것은 제가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이고

원하지 않아도 자꾸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니,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고 원망할 일도 아니거늘..

그것이 본인 탓인 양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나 봅니다.


퇴사를 고민하던 요즘... 생각이 아주 많아집니다.

든든했다니, 앞으로 조금 더 직장 생활을 유지해야 할 것 같고

고맙다 하니, 직장 생활하는 것 외에는 잘하는 것이 없으니 그것이라도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미안하다니, 그 모든 것이 누구의 탓도 아님을 알려줘야 할 듯한데...


깊이 고민하던 퇴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겨봅니다.



든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고 대답하며

오랜 세월 함께 한 시간을 돌아봅니다.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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