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고구마

by 단미

찬바람이 분다. 곧 서리가 내리겠다. 이맘때쯤이면 엄마 고구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매년 고구마를 심어 찬바람이 불 때쯤 고구마를 보내주신다.




어릴 적에는 추운 날 고구마를 캐는 일이 아주 힘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농사일은 항상 바쁘다. 찬바람이 느껴지는 이른 아침인데 엄마는 고구마를 캐러 가자며 서두르신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밭으로 향한다.


밭에 도착하면 밭두렁 하나씩 맡는다. 목장갑을 끼고 억세고 뻣뻣해진 고구마 줄기를 걷어낸다.

고구마 밭두렁은 끝없이 이어지고 덩굴을 걷어도 걷어도 끝이 없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고구마 줄기 걷어내는 일이 어느새 마무리되면 걷어진 덩굴을 한 곳으로 모은다. 질질 끌고 가서 모으고 또 모으다 보면 높게 쌓이게 된다.


얼기설기 쌓인 고구마 줄기는 스프링처럼 쿠션감이 좋게 느껴진다. 쌓아놓은 고구마 줄기 위에 올라가 눕는다. 거칠고 억센 고구마 줄기는 서로 엉켜 붙어 누워도 푹 꺼지지 않고 안정감을 준다. 높게 쌓인 고구마 줄기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 하늘만 보일뿐 세상의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아 아무도 없는 듯한 착각이 든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호미로 힘들게 캤던 고구마는 흙을 털어내고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방 윗목에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고정하고 그곳에 보관했다. 겨울 내내 귀한 양식이 되기도 했던 고구마는 어느 집에 가도 방마다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동치미 국물에 먹던 고구마 맛은 그 시절 최고의 맛이었다.


요즘은 먹을 것이 많아서 고구마가 대접을 못 받지만 어릴 적에는 고구마만 한 간식이 없었다. 쪄서 먹고 말려서 먹고 밥 대신으로도 먹었던 귀한 고구마였다.


추운 줄도 모르고 고구마 줄기 위에 누워 고요를 즐기던 어린날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는 올해도 고구마를 심었다. 요즘은 고구마를 포크레인으로 한 번에 캔다고 하더라. 세상이 많이 변했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게 호미로 캐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힘듦은 겪지 않아도 되겠다.


올해 수확한 고구마를 보내주셨다. 큰딸은 소탈해서 크고 작은 것을 무작위로 담아서 보냈단다. 작은딸은 까탈스러워서 작고 예쁘고 먹기 좋은 것으로 골라서 보냈다 하신다. 스스로 무난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엄마에게는 작은딸이 예민한 딸인가 보다.


똑같이 정성 들인 고구마일지라도 어느 해는 잘되고 어느 해는 못난이 고구마가 되기도 한다. 땅속 사정을 모르니 잘 된 고구마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다행히 올해는 잘되었다. 예쁘고 맛도 좋은 고구마를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엄마의 정성이 땅속까지 스며들어서 다행이다.


김이 모락모락 속이 노랗게 익은 엄마 고구마를 먹는다, 마를 만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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