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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Mar 09. 2022

나희도의 일기처럼

진저 캣의 일기

지난 달력은 반듯하게 오려서 엽서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작은 선물을 할 때마다 손편지를 써서 주고 있다. 처음엔 카톡이나 말이 아닌 손편지를 쓴다는 게 어색했는데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하고 다정한 일이 손편지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직접 편지지와 봉투를 만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아이였다. 기존의 편지 봉투를 조심스럽게 분해해서 원리를 익힌 뒤 빈 종이에 전개도를 그려 편지봉투를 만들고, 세트로 만든 편지지가 딱 두 번 접힌 상태로 봉투 안에 쏙 들어가도록 신경을 썼다. 편지지엔 글자를 방해하지 않도록 연한 꽃무늬와 구름 등을 색연필로 그려 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였을 수도 있는 나의 편지를 내 친구는 소중하게 여겨주었다. 

십 대엔 몰래 주고받기 좋은 쪽지에 써서 그 애와 둘이 주고받았고, 방학 동안 선생님께 편지 쓰는 과제가 싫어서 신문지로 편지 봉투를 만들어 우표 없이 부치기도 했다. 선생님은 두 배의 우표값을 벌금으로 내야 했지만 너처럼 엉뚱하고 재밌는 제자는 처음이라며 깔깔대고 즐거워하셨다.     

이십 대에도 나는 지독하게 편지를 썼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아예 A4에 썼는데 두 장을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서 늘 추신, 추추신으로 까먹은 말을 덧붙여야만 했다. 삼십 대엔 편지를 부칠 여유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날들이었지만 짧은 이메일로 압축된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이제는 달콤하면서 쓰고, 황홀하면서 지옥 같았던 감정을 편지에 쓰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책 속의 문장과 영화 속 장면에 대해 쉼 없이 조잘대던 소녀는 이제 중년이 되었다. 가끔 흥분해서 아이들에게 오늘 하루 벌어졌던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떠들지만 속마음을 다 펼쳐 보이는 편지를 쓰진 않는다. 

그래도 살아온 시간 속에는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석류알처럼 콕콕 박혀 있다. 그건 나희도(드라마 스믈 다섯 스믈 하나의 여주인공)의 일기처럼 흥미진진하고 애잔하며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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