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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Dec 05. 2022

억새가 어찌나 뽐을 내던지

진저캣의 일기

차량 수리를 맡기고 걸어서 출근했다.

책방으로 가는 길에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 억새의 마른 잎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반갑고 정겨웠다.

그동안 두 명의 입시생을 픽업&드롭하느라 운전대를 놓을 새가 없었다. 아이를 태우고 병원과 학원, 독서실, 터미널을 다니는 중에 책방의 독서 수업까지 늘어서 매일 방전 상태였다. 두 개의 도시락을 싸고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아주 가끔, 밤 아홉 시쯤 운동을 하러 가면서 이 숲 길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가을이 갔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춥고 메마를 거라 생각했던 초겨울의 작은 산 길은 여러 소리들로 활기에 넘쳐 있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특히, 햇빛에 반짝이는 억새가 어찌나 뽐을 내던지 나는 롱 패딩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과 핸드폰을 꺼내야만 했다.  

자연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었기에 마음의 궤도가 중심을 잃고 흔들렸던 걸까.

그래서 연이은 작은 사건들도 배포 있게 넘기지 못하고 쉽게 출렁거렸던 걸까.

나는 힘의 논리로 생각 없이 말을 내뱉은 헬스장의 트레이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면접장에 아이를 내려주기 위해 급하게 불법 유턴을 하다가 차량 수리를 하게 되었다. 불안과 피로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 간다고 느낄 때쯤, 나답지 않은 일들을 저지른 거다.   


이제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입시가 끝났고, 일주일만 버티면 나머지 한 명의 입시도 끝나니 다시 걷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걸으며 겨울의 새소리를 듣고 차가운 한낮의 빛이 그리는 풍경을 눈에 담아야 겠다.

그럼 궤도를 벗어나 이리저리 떠다니는 마음의 돌을 다시 중심에 놓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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