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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Dec 26. 2022

충만해지고 싶어.

진저캣의 일기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것은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과 같다. 가면 뒤에 있는 비열한 얼굴과 그 얼굴을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은 매캐한 연기 때문에 목이 따가워 참을 수 없는 기침처럼 내 안에서 참기 어려운 혐오감을 일으킨다.

나는 도저히  “아, 그래,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라고  말할 수 없다.  “실은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 줄 알아? ”하며 실체를 말하고 싶은 걸 삼키느라 계속 기침이 날 뿐이다.

전남편은 아이가 학폭으로 힘들어할 때 혼자서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나에게 이혼을 통보했고, 재산분할에 넣지 않기 위해 시골의 땅부터 시아버지 명의로 돌려놓으며 재산분할을 주도했다.

나는 절망에 빠진 상태로 아이의 등록금과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겠다는 걸 일 년 동안 달래고 달래서 겨우 받기로 했다. 내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여자랑 자고 온다는 걸 알았지만 그 돈을 받기 위해서 모른 척해줬다.

나에겐 변변한 가족도 없어서 제대로 분출되지 못한 분노와 혐오와  슬픔과 버림받았다는 기분과 우울과 고독과 절망으로 심장이 패이고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강아지를 키우고, 여자랑 알콩달콩 사느라 아이들에게 신경도 안 쓰던 그는 얼마 전에 여자랑 헤어졌는지 이제 아빠 집에 놀러 와도 된다는 톡을 아이들에게 보냈다. 자기가 행복할 땐 등록금도 안 주려했고, 여자랑 살아야 한다며 생활비도 안 주던 인간이 이제 좀 외로워지니 자식이 보이는 건가 싶어서 혐오스러웠다.

크리스마스 전날, 아들의 원룸짐을 정리하느라 힘들게 지방 운전을 다녀왔는데 전남편의 폭풍 카톡이 와있었다.

그 카톡의 내용은, 나에게 잘한 것 없는 너에게 내가 재산분할을 너무 많이 해주었다는 짜증이었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는 등록금을 천 원까지 계산해서 정확하게 주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언제나 1순위는 돈, 2순위는 자기 자신, 3순위는 아빠와 형이었는데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완고해진 꼰대가 되어 퍼붓는 말투에 혐오가 일었다. 무엇보다 자식 일에도 인색하게 구는 것에 질려 버렸다.

경솔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언제나 남 탓을 하고 원망하는 한심한 태도도 여전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나는 구토가 날 것 같았다.


x남편으로부터 되지도 않는 내용으로 신경질을 부린 카톡을 받은 지 이틀 뒤, 아이들은 일 년 만에 아빠의 새 집에서 놀고 왔다. 강아지를 안고, 오락기로 게임을 하며 놀고 밤 열 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나는 지금 코로나 확진으로 안방에서 꼼짝없이 격리 중이다.

착한 가면을 쓰고 아이들과 찍은 전남편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니 정말 정말 역겨워서 핸드폰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아이에게 “네 아빤 자식에게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계산하는 치사한 인간이야. 다시 여자가 생기면 너희들은 잊어버릴 거야. “라고 말할 수 없어서 침을 꼴딱 삼켰다. 표정관리를 안해도 되니 코로나로 격리 중인 게 다행이었다.


나를 당황하게 만든 건 혐오감과 함께 내 안에 덮쳐오는 서운함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얼마나 참고 버텼는데, 타오르는 증오와 혐오를 지금도 확인하는데, 그런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아빠랑 시간을 보내고 온 아이들이 조금 밉고 서운했다.

아이들이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건 엄마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서운해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약간의 미움과 서운함이 들었다. 만약 나에게 엄마나 여자 형제가 있어서 함께 애들아빠를 신랄하게 헐뜯었다면 기분이 좀 나아졌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헌신했다. 믹서기에 갈듯 나를 다 갈아 넣었다. 그래서 더욱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정성을 조금씩 거두려 한다.

대학까지 보냈고  두 아이 모두 분명한 자기의 목표가 있으니 나도 남은 힘을 그러모아 내 발에 힘을 실어 걸으려 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남자 친구도 만들고, 혼자서 드라이브도 하고 무엇보다 3순위로 미뤄뒀던 작업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년에는 정서적으로 충만해지고 싶다. 사랑도 퍼주기만 하면 고갈되는 법이고 자력으로 채워지는 충만함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내년에는 다정한 안부를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어서 이렇게 인간에 대한 혐오감과 아이들을 향한 서운함으로 축 처질 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위로를 받고 싶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충만한 순간들을 늘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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