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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Oct 17. 2023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산책하는 진저캣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이제 그 애는 그림에 대한 얘기와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며 느낀 생각들, 요즘 듣는 음악을 남자 친구와 나눈다.


딸의 남자친구는 과음과 흡연을 안 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외향적이어서 우리 딸과 쿵작이 잘 맞는다. 우리 애가 걱정이 많고 완벽주의자적인 면이 다분히 있는데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토닥여주는 낙천적인 면도 좋아 보인다. 자취하는 남자친구에게 집밥을 먹이고 싶었던 딸의 자연스러운 꾐에 넘어가 내가 두 번이나 밥을 해줬다. 그래도 직접 보니 맑은 청년 같은 인상에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내 딸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대하는 것 같아 참 고마웠다.

내가 인생의 반을 내 편이 없는 채 외로움에 허덕이며 살았는데 내 딸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소통하는 걸 보니 기뻤다.

엄마에게 전적으로 영향받던 아이가 조금씩 독립을 하더니 이제 사랑하는 사람까지 만났다. 몇 달 전 여름 해외 봉사를 다녀왔을 때 까맣게 탄 얼굴로 눈빛을 반짝이며 어디에서도 얻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을 했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 아이는 세상을 배웠고 내적인 힘을 키웠다며 자신감의 빛을  뿜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단단한 내가 되었을 때 누군가를 만나니 건강한 교제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나와 일상을 나누던 아들은 기숙사에 내려가 있고, 딸에게는 남자 친구가 생겨서 나는 이제 마땅히 대화할 상대가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제 그 애는 패션 코디에 대한 조언도 남자친구에게 맞춰져서 내가 아주 엉망진창으로 입은 게 아니면 무얼 입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남자친구랑 저녁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대부분이라 유튜브에서 찾은 새로운 요리법으로 나를 귀찮게 하는 일도 없다. 나는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서 대충 차린 혼밥을 먹고 있다.


우리 셋은 모두 예술을 해서 타인과 쉽게 공유되지 않는 부분을 갖고 있고, 서로가 그 아쉬움을 채워주는 사이이기도 하다.. 나는 주로 아들과 고양이를 돌보며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딸과는 전시회나 음악, 비건 요리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다. 나는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비평을 참고해서 그림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다.

우리 가족의 명절 풍경 역시 다른 집과 다르다. 나는 갈 곳도 민날 사람도 없기 때문에 명절이란 그저 일을 쉬고 아이들과 여유 있게 집밥을 먹는 날일 뿐이다.


어느 날, 딸이 엠티에 가고, 아둘이 기숙사에 가면서 혼자 자게 되었다. 그때 나는 지독하게 불안하고 긴장돼서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영화도 예능 프로도 다 재미없고 입맛도 없고 집이 너무 크고 황량하게까지 느껴졌다.

마침 선물 받은 와인이 있어서 한 모금 마신 뒤에야 잠들었지만 다음 날까지도 나의 불면에 스스로 당황할 뿐이었다. 그 경험은 나를 조금 울적하게 만들었다.

이혼을 통해 씩씩한 나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중년의 홀로서기를 제대로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나를 좀비처럼 만들었던 저주에 풀린 거였고 홀로서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결핍의 어린 시절과 청춘을 지나 허무함을  삼키는 삼십 대를 거쳐 중년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사랑이 인생의 답이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생 제대로 누리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한 결핍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것도 사랑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결핍을 채워주던 딸의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다. 컵의 반 밖에 없던 물을 누군가 꿀꺽 마셔서 줄어든 기분이다.


나는 울고 싶지 않다. 공허함과 서글픔과 쓸쓸함에 지는 것 같아서 울고 싶지 않다.

이건 내가 부모이고 중년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나의 몫이다. 언제나 내 친구들보다 먼저 경험하는 나는 오롯이 혼자 걷고 넘어야 하는 내 몫의 언덕길을 또 만난 거다.

중년에도 삶은 적적하고 아프고 우울하다. 그게 인생이겠지. 그게 살아있다는 거겠지. 이렇게 언덕을 넘다 보면 잠깐 꽃피는 평지를 만나고 땀을 닦게 되는 것. 그게 삶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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