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캣의 일기
시월.
시월의 하늘엔 부부젤라 소리를 내며 남쪽으로 날아가는 철새 떼가 있다. 어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습도도 높았는데 새들은 여전히 뿌우 뿌우 꿱꿱 서로를 응원하며 날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새들의 삶도 참 고단하구나, 그래도 외롭진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시월의 거리엔 갈색 머리를 터는 가로수가 있다. 예전의 나는 그 모습에 서러움을 느꼈다. 뜨거운 태양을 이기고 무성한 잎사귀를 피우던 나무가 홀쭉해지는 모습이 안쓰럽고, 저 낙엽처럼 내 인생도 애쓰다 툭 떨어져 끝나겠지.라는 생각으로 울적했다. 그땐 아이들이 어렸고, 나는 정서적으로 굶주렸고, 오래도록 차기작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키우고 있는 열매와 꽃을 보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밟히는 낙엽의 삶만 지속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나는 머리를 터는 가로수를 보며 볼품없는 결말이 아니라 충실한 삶이 누리는 휴식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 데크에 심은 라일락 나무가 나에게 그 휴식을 알려 주었다.
시월에는 냄새가 있다. 어느 집에서 장작을 태울 때 번져오는 그 냄새는 살아있다는 걸 행복하게 만든다. 집안일을 하며 급하게 만들고 작업실로 출근할 땐 몰랐던 구수한 고구마와 밤의 냄새도 퇴근을 행복하게 한다.
올해의 시월엔 바이올린의 팽팽한 줄 같은 긴장감이 있다. 벤의 대학 수시와 나의 두 번째 출간을 위한 작업의 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보다 시월을 풍부하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일상에서 찬찬히 시월을 발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