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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Oct 07. 2021

시월

진저캣의 일기

시월.

시월의 하늘엔 부부젤라 소리를 내며 남쪽으로 날아가는 철새 떼가 있다.  어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습도도 높았는데 새들은 여전히 뿌우 뿌우 꿱꿱 서로를 응원하며 날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새들의 삶도 참 고단하구나, 그래도 외롭진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시월의 거리엔 갈색 머리를 터는 가로수가 있다. 예전의 나는 그 모습에 서러움을 느꼈다. 뜨거운 태양을 이기고 무성한 잎사귀를 피우던 나무가 홀쭉해지는 모습이 안쓰럽고, 저 낙엽처럼 내 인생도 애쓰다 툭 떨어져 끝나겠지.라는 생각으로 울적했다. 그땐 아이들이 어렸고, 나는 정서적으로 굶주렸고, 오래도록 차기작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키우고 있는 열매와 꽃을 보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밟히는 낙엽의 삶만 지속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나는 머리를 터는 가로수를 보며 볼품없는 결말이 아니라 충실한 삶이 누리는 휴식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 데크에 심은 라일락 나무가 나에게 그 휴식을 알려 주었다.  


시월에는 냄새가 있다. 어느 집에서 장작을 태울 때 번져오는 그 냄새는 살아있다는 걸 행복하게 만든다. 집안일을 하며 급하게 만들고 작업실로 출근할 땐 몰랐던 구수한 고구마와 밤의 냄새도 퇴근을 행복하게 한다.  


올해의 시월엔 바이올린의 팽팽한 줄 같은 긴장감이 있다. 벤의 대학 수시와 나의 두 번째 출간을 위한 작업의 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보다 시월을 풍부하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일상에서 찬찬히 시월을 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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