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는 초능력

깐따삐아 별과 방귀 괴물

by 미미

"너 자다가 방귀 뀌면 슝 천장까지 올라갔다 오더라!"

"?!"

"진짜야, 아빠가 밤에 뽀뽀하려다가 봤어."

"에이~ 말도 안 돼요."


항상 늦게 귀가하는 남편은 집에 오면 먼저 잠든 아이들에게 꼭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제발 깨우지 말라는 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쪽쪽 소리가 풍년이다. 잠든 채 씩씩한 방귀소리를 들려주곤 하는 첫째를 진지하게 놀리는 남편의 농담이 들려왔다. 방귀로 몸이 날아간다는 헛소리를 저렇게 심각하게 할 일인가? 헛웃음 짓다가 돌아보니 첫째가 날 보고 있다. 큰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물었다. 진실이 너무도 궁금하다는 눈빛이다.


"엄마, 진짜예요?"

"아... 그게..."

"아니죠?"

"천장까진 아니지~! 아빠가 오버했네. 근데 방귀가 꽤 세니까 공중으로 살짝 뜨기는 해."


아, 진짜 믿을 줄 몰랐는데 첫째의 순진한 반응을 보니 순간 당황한 나머지 남편의 쓸데없는 드립에 나까지 동참하고 말았다. 그것도 그 짧은 순간에 치밀한 사고를 통해 천장은 좀 심하니까 살짝 뜬 정도로 하자 판단해가면서 얼토당토않는 스토리에 힘을 보탠 것이다. 엄마가 동조하자 신빙성이 있다고 느꼈는지 녀석은 잠들기 전에 살짝 부탁을 한다.


"엄마 내가 또 방귀 때문에 몸이 뜨면 꼭 찍어놔 주세요. 저도 보고 싶어요."

"(아, 크게 웃을 뻔했다만) 엄마도 자야지. 못 찍어."

"혹시 깨 있으면요."

"그래... 알았으니까 얼른 자자."


나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는 요즘이다. 예전에도 체력 떨어졌다 소리를 했었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적어도 애들을 재우고 나오면 정신이 들었는데, 이제는 육퇴를 해도 잠이 쏟아져 아무데서나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해야 할 일을 쌓아놓고 잠들어버리기 일쑤고, 아침이면 쫓기듯 하루를 시작한다. 부족한 시간과 쫓기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삶의 목적을 잃고 육퇴만 기다리는 게 솔직한 마음이고, 아이들이 빨리 잠을 청하지 않으면 내 기분이 나빠지곤 한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에게 제발 자라는 말을 대체 몇 번 하나 싶다.


"제발 자라... 엄마는 아직 할 일이 산더미야."

"잠이 안 와요."

"그렇게 놀고 왜 잠이 안 올까나..."

"몰라요..."


아이들의 마음이 훤히 보이는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가 나는 순간에도 아이들의 마음이 투명하게 보인다면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각자 부쩍 자란 두 아이가 자꾸 일으키는 다툼을 보며 고민이 커진다. 중제 하기도 내버려 두기도 어려운 순간들이 반복되고 대충 끊고 덮어버리고 싶은 난제들이 쌓여간다. 내 하루의 목적이 애들을 무사히 재우기 위함은 아닌데 이렇게 매일을 보내도 되나 덜컥 겁이 난 어제의 나는 넷플릭스로 <금쪽같은 내새끼>를 뒤적거리다 틀었다.


낯선 아이에게서 꼭 우리 아이 같은 모습을 보았다. 저녁에 들어줄 수 없는 떼를 쓰는 둘째를 단호한 한마디로 잘라내고 화를 꾹 참은 채 뒀더니 생각보다 금방 진정되는 게 아닌가. 불안이 높은 기질의 아이에게는 부모의 말도 불필요한 자극일 때가 있다는 내용을 접하니 그동안의 내 모습이 머리에 스쳤다. 아이가 흥분한 채 어떤 말도 듣고자 하지 않을 때도 긴 대화로 풀고자 했던 건 어른인 내 욕심일 뿐이었다. 길게 떠들어봤자 아이 머릿속에 살아남는 내용은 없었던 것이다.


첫째의 등교를 주로 담당하는 남편이 새로운 드립을 쳤다고 고백해왔다. 아들 속이는 재미에 푹 빠진 모양이다. 적당히 좀 하라고 얘기해도 이미 너무 신난 남편은 계속 장난을 친다.


"사실은 너 지구인이 아니야.."

"!!"

"깐따삐야 별에서 널 지구별에 맡겨놓은 거야."

"아니야! 난 지구인이야!"


말은 지구인이라는데 이미 믿는 눈치다. 게다가 족발을 먹는데 쫄깃한 부분 다 빼고 살코기만 먹는 첫째가 맛있다고 신나서 자랑하는데 그 한마디에 남편이 또 치고 들어온다.


"난 족발 킬러인가 봐요. 너무 맛있네."

"역시 넌 깐따삐야 별 사람이 맞네! 깐따삐야 별 사람들은 원래 족발 살코기만 먹는대. 쫄깃한 거 떼고."

"....... 아니야!"


아이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역시나 아빠 말을 또 홀랑 믿었다. 퍽이나 지구인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남은 족발 껍질을 작게 잘라달라더니 먹어보기에 이르렀다. 삼겹살도 기름 떼고 먹는 녀석에게 족발 껍질이 어인 말인가. 어쨌든 먹었으니 아빠한테 지구인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라고 했다. 이만하면 남편도 그만 하겠지 싶어 아빠의 반응을 물었는데 아이로부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한테 족발 껍질도 먹었다고 얘기했어?"

"네... 그런데 요즘엔 깐따삐아 별 사람들이 족발 껍질도 먹는대요..."

"하아...(이 남편아...)"


나는 진지하게 그만 하라고 남편에게 전했다. 아, 남편의 헛소리를 막을 초능력도 몹시 필요하다.


"엄마, 나 정말 깐따삐아 별 사람이에요?"

"아니야, 엄마 보물한테 누가 자꾸 외계인이래!"

"엄마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해요."

"아닐 텐데~ 엄마가 더 사랑할 걸~"


오랜만에 공기가 좋아졌길래 놀게 해주려고 아이 친구네와 접선했다. 지나가던 둘째 유치원 친구까지 만나는 바람에 공원 방문이 더 보람찼다. 집에 늦게 돌아와 서로 피곤한 상태로 하루를 마감하다 문득 생각했다. 오늘의 이 아이들은 내가 다시 만날 수 없다. 내일이면 더 길쭉해져 있고, 그다음 날이면 세상의 비밀을 하나씩은 더 배운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훗날 얼마나 그리울 날일까 생각하니 눈물이 차올랐다. 그 생각으로 녀석들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진다. 아이들은 방금 전까지도 진짜 외계인처럼 내 말을 못 알아듣고, 이불속에서 지독한 방귀를 뀌며 깔깔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깐따삐아 별에서 온 이 방귀 괴물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토닥이며 재웠다. 외계인들 데리고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위로받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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