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자원봉사자의 시선
2019년 11월
나의 메모장엔 그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호스피스 병동의 다양한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자녀를 사별한 가족 모임'.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모임에 봉사자가 필요했고 내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호스피스 봉사를 가지 않는 다른 평일 오전은 출근을 해야 했기에 주말에 진행되는 사별가족 모임은 마음의 부담을 덜고 참여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임은 길게 가지 못했었다. 함께 했던 일 년 남짓의 시간 끝엔 작은 메모가 있었다. 어린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부터 30대 결혼한 아들을 떠나보낸 부모까지... 사연은 모두 달랐지만 꾹 눌러낸 아픔은 똑같았다.
교통사고로 20대 청춘의 딸을 떠나보낸 어머님이 이야기했다. 충격과 고통, 그 모든 것들을 딛고 어느덧 눈물이 마르기도 하는 날이 생겨나자 이제는 딱 한 가지만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한다. 그리움.
그림움이 짙어지는 아침마다 딸에게 이야기를 한다. '딸아. 오늘도 너에게 하루 더 가까워졌구나.' 이렇게 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를 견디어 내는 것이 딸에게 가는 한 걸음이 되어서 겨우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말 사이사이에 삼켜내는 눈물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공감하는 다른 가족들이 먼저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이때, 나에게는 떠오르는 꽃님이 있었다. 당시 호스피스 병동에 열일곱 살 아들을 병간호하던 엄마가 있었다. 뇌암으로 말도 못 하고 거동도 못하는 아들의 얼굴을 매일 어루만지던 엄마였다. 병실 침대에서 샴푸를 하는 날이면 봉사자들과 함께 아들의 머리를 감겨 주었고, 목욕실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정성 어린 손길로 목욕을 시켜주던 엄마였다. 매일 목욕시켜 주던 갓난쟁이 아들을 다시 본 듯, 조심스러운 손길엔 사랑이 가득했다.
아들의 컨디션이 안 좋아질 때면 씩씩하게 버티던 엄마의 어깨에 흐느낌이 번져갔고,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흔들리는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두곤 했다.
당시 자녀를 사별한 가족들의 모임에 가면 그 엄마가 떠올랐다. 호스피스에서 아들과 함께 하고 있는 순간조차 사무치는 그리움의 시간이 될 것이란 걸 알기에, 잔인하게도 가장 슬픈 시간을 기꺼이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 나라면 가능할까. 가녀린 열일곱 꽃님의 엄마가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엄마 마음에 심겼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작은 꽃을 피워냈길 바란다. 아들을 슬픔이라 떠올리지 않기를. 아픔이야 사라지지 않더라도 꽃을 보며 한 번씩 웃어 보일 수 있는 하루를 살아내길,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손을 모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