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자 이야기
고요한 병실에 들어서며 마주치는 눈마다 가벼운 목례를 한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환자를 향했다. 맞은편에 보이는 잿빛 건물이 하늘을 절반이나 가리고 있다. 정원으로 꾸며 놓은 옥상에 뿌리내린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롭게 바람에 나부낀다.
"발마사지 해드릴게요"
할아버지의 시선은 여전히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온몸으로 찬바람을 막아서고 있는 창문 앞에 내 몸을 밀어 넣었다. 드디어 나와 눈이 마주친 할아버지의 귀에 두 손을 가까이 모았다. 그리고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발마사지요~"
공허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이윽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크게 대답했다.
희미해져 가는 청각을 대신해 시각, 촉감이 세상을 보는 유일한 창문이었다. 더 부드럽게 발을 마사지했다. 더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줄곧 창밖을 응시하던 할아버지의 시선이 나의 손에 매달렸다. 중간중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지어 보이는 따뜻한 눈빛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무릎부터 발끝의 림프를 따라 오가던 손가락이 멈추자 할아버지는 양손을 힘껏 들어 흔들어 보였다. 경직된 얼굴 주름살 사이에 옅은 미소가 피었다. 온 힘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병실 사람들이 한 마디씩 얹었다. 오랜 시간 창밖만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참 적적했을 거라고, 세상과 소통하는 소리를 귀와 입에서 다 잃고 많이 힘드셨을 거라고.
할아버지를 향해 양손을 흔들어 화답하고 고개도 푹 숙여 인사드렸다. 맞은편 환자로 옮겨와 발마사지를 계속했다. 병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보다 더 뜨거운 빛이 느껴질 때마다 고개를 돌려 보았다. 거기엔 창 밖이 아닌 나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주고 계신 할아버지가 계셨고, 양손을 들어 손뼉 치는 듯한 재스쳐를 취하셨다.
바람만 나부끼던 잿빛 하늘에 잠시나마 햇살이 비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한 주 동안 파랗게 멍든 나의 하늘에도 할아버지의 온기가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