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는 공부 중(1)

친정 엄마의 마지막 수업

by 민정애

94세인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지 3주가 되었다. 엄마를 모시고 있던 동생이 갑자기 입원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사시다가 집에 불이 났다. 집은 전소되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엄마는 무사했다. 그 후 여동생이 엄마를 10여 년 동안 모시고 살았다. 우리 형제는 6남매로 딸 넷에 아들 둘이다.

엄마가 장수하게 되니 자식들도 나이가 들어 노인이 노인을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하게 된다. 또 부모는 열 자식을 키워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알게 된다. 우리 6남매, 마음으로는 모두 엄마를 잘 모시고 싶지만 각자 자기 사정이 있으니 선뜻 ‘내가 모실게’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큰 언니네는 형부가 편찮으시고 작은 언니도 사정이 있고, 올케들에게 기저귀 차는 엄마를 맡기기는 좀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엄마를 맡을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아 우리 집으로 모셨다.


물론 나도 나이는 70, 목 디스크도 있고 허리도 좋지 않은 데다가 아직 나의 일인 강의도 해야 하고 합창단, 독서클럽 등 모임에도 참석해야 한다. 하지만 나마저 못한다고 하면 엄마는 요양원으로 가셔야 한다. 지금 내 마음은 요양원으로 가실 땐 가시더라도 마지막 효도를 원 없이 하고 싶다. 물론 나를 위한 일이다. 엄마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감사히 여기며 그저 마음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고 싶다.


요즘 엄마와 나는 서로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나이 들어 늙어 간다는 것,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다.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것 같은 노년, 엄마는 나에게 ‘인생의 마지막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며 공부시켜주신다. 엄마는 지금 약한 인지 장애가 시작되셨다. 뒤처리를 잘 못하는 엄마를 씻길 때마다 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엄마가 내 기저귀 갈아줄 때 냄새난다고 고개 돌리지 않으셨을 텐데 나는 아직 그 냄새가 편치 않으니 말이다. 내가 엄마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인생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마지막까지 자존감을 지키며 살고 싶지만 인생이란 예상치 못한 걸림돌을 만나기 미련인 걸, 그 걸림돌을 어떻게 지혜롭게 넘을 것인가? 딸이 없는 나는 며느리에게 나의 뒤처리를 맡기고 싶지 않다. 마지막까지 자존감을 지키고 살려면 나에게 인지 장애가 오기 전에 스스로 대책 마련을 해야지 다짐도 해본다.


엄마도 역시 마지막 수업에 열심이시다. 뒤처리를 손수 해보려는 공부도 열심히 하신다. 나는 엄마의 인지 장애를 늦추려 수시로 질문을 한다.

‘엄마, 오늘 아침에 뭐 드셨지?’ 하면 ‘몰라’라고 하며 귀찮다는 듯 대답하고도 골똘히 생각해 한참 만에 정답을 맞히기도 한다. 아버지 얼굴도 생각이 안 난다고 하면서도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면 ‘내가 이렇게 젊은 사람하고 살았었네’ 하며 웃기도 하신다.

나는 이번 엄마와의 공부를 통해 인지장애(치매)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꾸기로 했다. 엄마가 인지 장애가 없다면 얼마나 마음으로 힘드실까? 물론 가족들에겐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본인 에게는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정신은 멀쩡한데 신체의 부자유로 인해 나의 치부를 자식들 앞에 드러내야 하고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쓸모없는 인간이란 인식을 하게 된다면 하루하루 견디기가 너무 힘들 것 같다. 엄마가 그저 인지 장애를 핑계로 많이 웃으시며 마지막 수업 시간을 즐겁게 보내시길 기도한다.


김 사인의 ‘다 공부지요’라는 시가 나를 위로한다.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끓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섯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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