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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내 Dec 28. 2020

기억나는 사람

10년 뒤 어느 날 갑자기

2020년의 마지막 월요일 아침이다. 출근해야지. 휴대폰 알람을 끄고, 제일 먼저 메일을 확인한다. 완벽하고 싶다는 나의 야심이 반영된 습관 행동이다. (가끔 주말에도 한 번씩 들어간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오늘의 일과를 생각한다. 매일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특별하기 때문에 긴장하며 회사로 향한다.


12월 첫 번째 월요일은 보통의 날과 달랐다. 스팸인 듯 스팸 아닌 메일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안녕, 오랜만이야." 뭐지!? 대학교 2학년 때 만난 중국인(조선족) 교수님의 메일이었다. 

잊어버렸을라나 10년전인데
어제 갑자기 옛날 생각나서 메일함에서 학생들 메일 따로 지정해놓은 메일들을 보다가
너 그때 참 고맙게도 나한테 메일 많이 보내줬구나 하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그 고마움에 잠을 설쳤단다.
비록 10년이 지났지만 너한테 메일로라도 연락해봐야겠다는 생각 들어서 이렇게 메일 보낸단다.
(...)
아무튼 그때 예쁘고 정이 많았던 네가 문득 생각나서 이렇게 중얼거려봤어.
그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지만 그래도 민해는 내 기억 속에 남는 몇 안 되는 제자이거든.
아무쪼록 행복하게 잘 지내고 괜찮다면 소식도 좀 전해주렴.


20대에 읽은 어느 책의 한 페이지. 가장 힘이 된 열 글자.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눈물 날 정도로 감사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옛날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2학년 때 교수님을 만나서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3학년 때 혼자 상하이에서 공부하면서 어려움이나 있었던 일들을 주절주절 적어 메일을 보냈다. 진짜 힘들었나 보다. (토닥토닥. 수고했다.) 다른 교수님들께도 자주 연락드렸었는데, 이 교수님께서는 항상 답장을 보내주셨다. 오래간만에 지난 메일들을 확인해보니, 내 인생에 가장 빛났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메일 확인하고 출근하면서 예전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
10년이 지났는데 어느 날 저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하고, 소식 전해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고, 언제 한국에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건강하세요! 


나도 그 동안 정신없이 살아왔던 것 같아.
이제는 학교에서도 인정 받는 교수가 되었는데 여기까지 오기가 참 힘들었어.
(...)
코로나때문에 언제 다시 한국 갈지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자주 나가는 편이야.
아무튼 답장 줘서 고맙고 사는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 항상 잘 지내~~


현재와 과거에 바랐던 모습이 같지 않다. 인생은 계획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안다. 그래도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착실하게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기대하지 않은 큰 감동이 오는 날이 있다. 


2020년 12월의 어느 평범한 월요일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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