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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 Feb 13. 2020

수어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차별과 역차별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청인입니다.

전소민씨가 농인 팬에게 수어를 한마디 했다고 천사 여배우라고 칭찬하는 기사를 보았다. 

최민수씨가 방송중에 농인 팬을 만나 친절히 대해주었다고 칭찬하는 글도 있었다.

(어그로 기사들을 보고 짜증내는 내 자신도 한심하지만,)

수많은 카메라가 돌고 있는 상태에서 연예인들이 팬들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본인의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과연 그정도로 칭찬할 일인가 싶다. 해당 연예인을 비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한국어 하나로 문제 없이 소통할 수 있어서 그런지 외국어를 과도하게 숭배하는 것 같다.

연예인들이 외국에 촬영을 가서 영어로 이야기를 몇마디 나누면 굳이 그걸 그렇게 칭찬하고,

아이들이 다국적 부모님의 언어들을 쏙쏙 잘 받아들여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면 '언어 천재'라고 칭찬하고...

칭찬은 좋은 것이나, 그렇게 과도하게 언어에 집착하는 것을 보는것이 나는 조금 거북하다. 


예전에 동일본대지진때 도쿄에 있었다. 

집에 가는 지하철안에서 졸고 있었는데 지하철이 멈췄고, 잠시 후 방송이 나왔지만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었다. 눈치껏 다른 사람들을 따라 선로로 나와서 역으로 올라왔는데, 일본어로만 안내되는 상황에서 다음차가 있다는건지 없다는건지, 어떻게 해야 집에 갈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나중에 쓰나미가 덮치는 뉴스화면을 보고나서야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한국어로만 안내가 이루어진다면 농인들도 그때의 나처럼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서 일본에 간 거니까 내가 노력해야 되는거였고, 이번에는 농인이 음성 한국어를 배우는 것 보다 청인이 수어를 배우는 것이 더 수월할테니까 내가 수어를 배워보겠다고 다짐한거다.


예전에 수어교실 발표회를 했을때(아, 진짜 하기싫었다 연극 ㅠㅠ), 우리반의 주제는 '농인부부의 일상' 이었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형식이었는데, 나름 블랙 코미디였다. ㅎㅎㅎ

내가 맡았던 여러가지 역할 중 하나는 레스토랑의 청인 알바생이었다.

농인 부부에게 주문을 받으러 가서 그들이 손짓으로 메뉴판을 가리켰을 때 내 대사는,

"(영어로) 오우! 나 영어 잘해요! 주문 하시겠습니까?"

그 다음에 그들이 필담으로 보여주면 그제야 알아차리고 나도 수어를 배웠다고 반가워하며,  

"(노래와 수어로)당신은~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모국어 이외에도 다양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면 더 넓은 문화를 접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더 넓힐 수 있다.

수어도 그런 다양한 언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특별할 것이 없지 않을까?  

다른 언어들도 각각 다 아름다운데 유독 수어만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도 치켜세우는지 모르겠다...

아, 음성언어가 대부분인 지구에서 수어가 시각언어라서 특별한 것인가? 그렇다면 또 할말이 없다. 어렵다. 










이전 01화 '수화'가 아니고 '수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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