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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 Jun 25. 2021

한국어와 한국수어

듣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

취미로 수어를 배우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여전히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수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하면 그런(?!) 학원도 있냐고 한번 더 놀란다.

(정식 명칭은 수어교육원인데 귀찮아서 그냥 학원 간다고 말하는 것임ㅋ)


한국인으로서 한국수어를 배우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고)

1년쯤 배웠으니까 수어통역사를 해 보라고 하기도 한다. (어이쿠)

한국어 그대로를 손모양으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저 손동작만 외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있나보다.

그러나 한국어 모국어 화자라고 해서 한국수어가 쉬운 것이 절대 절대 아니다...



수어는 판토마임이나 제스처가 아니라 언어이기 때문에 고유의 문법 체계가 있고, 수어 학습자들은 그 문법을 배워야 제대로 된 수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 대응식 수어(혹은 문법식 수어)를 지양하고 한국수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대응식 수어는 수어 문법을 무시하고 한국어 문법대로 수어로 표현하는 건데, 음성 언어를 함께하기도 한다.짧은 문장이야 대충 의미가 통할 수 있지만 문장이 복잡해지면 그 뜻이 산으로 간다.


교육원에서 선생님께서 예를 들어 주신 문장이 바로 "어머니는 피곤한 아버지를 걱정하신다"였는데,

이걸 한국어 대응식 수어로 하면 '어머니+피곤하다+아버지+걱정하다' 이렇게 도출되니, 어머니가 피곤하고 아버지가 걱정하는 게 되어버리는 거다.

수어는 조사를 생략하는 대신에 주어와 목적어를 손의 위치로 표시한다.

그렇기때문에 농인들이 한국어로 글을 쓸 때 조사 사용이 좀 어색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 농인의 지적 수준을 판단하면 절대 안된다. 영어를 꽤 잘하는 학습자들도 글쓰기를 하면 영문법 실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어 단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수어가 쉬운 것도 아니다.

수어 트레이닝 반에서는 어휘를 계속 계속 배우는데, (근데 자꾸 잊어버린다...)

영어로 치면 사과= apple 가다=to go 이런 식으로 어휘를 마구마구 학습하는 식이다.

물론 언어의 기본이 어휘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단어만 많이 안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곰이 사과를 먹었다'를 영어로 표현할 때 한국어 어순대로

Bear(곰) Apple(사과) Ate(먹다의 과거형) 이렇게 영단어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영어 문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래서 영문법을 배운다. '주어 - 동사 - 목적어' 이런 거.


청인 친구에게 '너 어디 가?' 라고 묻는다면

농인 친구에게는 '너+가다+어디+물음표' 라고 말해야 한다. 수어 문법에서는 육하원칙이 마지막에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음표는 얼굴 표정으로 표현한다.

이걸 '비수지'라고 한다. 수어는 시각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표정이나 손의 위치도 각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수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일본 농인이 수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을때 몇가지 어휘나 분위기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다. 수어 네이티브들은 당연히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아들을거다.


* 수어의 구성요소는 수동(손의 동작), 수형(손의 모양), 수위(손의 위치), 수향(손의 방향) 그리고 비수지 이렇게 다섯 가지다.



 한국어는 한국 청인들의 모국어고, 한국수어는 한국 농인들의 모국어다.

청인은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이고, 농인은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구별'하는 기준을 청력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로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듣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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