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을 둔 그 시절 엄마에게
씩씩하고 명랑하다 해도, 역시나 사춘기를 피하지 못했다. 남들보다 못 듣는 점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사춘기 때는 불편함인지 속상함인지 모를 어떤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몰라도 유독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이 기억난다.
어린 시절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오빠는 나에게 있어 늘 부럽기만 한 존재였다. 방에서 친구들과 게임하며 헤드셋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빠가 사 온 MP3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오빠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지금도 에어팟이나 헤드셋 같은 전자기기를 착용하진 못한다. 고막으로 듣는 게 아닌 기계의 신호로 듣는 것이기 때문에 귀에 그런 기기를 착용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인공와우 전용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어린 시절 전화로는 소통이 가능했지만 소리가 작게 들리는 일반 이어폰이나 헤드셋으로는 거의 못 들었다.
학교만 가도,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MP3를 들으며 등교하는 친구들의 흥얼거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하게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아이돌인 god 팬이었다. 가끔 오빠 몰래 MP3를 가져와서 음악을 들어보곤 했지만 나한테는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었다.
나도 이어폰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그런 아쉬움과 속상함이 계속 쌓였던 것 같다. 그 전에는 내가 남들과 듣는 소리가 달라도 이해를 했었는데 그즈음부터 인공와우를 착용하는데 왜 비장애인들처럼 소리를 못 들을까 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마냥 놀이터를 뛰놀고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중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공유 안 되는 부분이 하나씩 다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쌓였던 속상함이 어느 날 터지고 말았다.
방문을 잠그고 몰래 엉엉 울고 있었다. 보통날처럼 엄마는 밥을 먹으라며 노크를 했을 때 나는 큰소리로 '나도 오빠처럼 잘 듣고 싶다고!' 라며 엉엉 울었다. 엄마는 마냥 밝던 딸이 눈물을 보이니 많이 당황하셨다고 한다. 나보다 엄마가 더 많이 속상해하실 텐데... 너무 철없었던 시절이었고, 내 감정들을 엄마에게 다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난 오빠가 부러운 이유들을 하나하나 다 쏟아냈고 엄마는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이 악물고 꾹 참아내셨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한 후 난 겨우 진정하고 밥을 먹었고 다 들어주셨던 엄마는 조용히 안방에 들어가셨다. 너무 조용해서 안방 문을 살짝 열어봤고 소리 없이 우셨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난다. 나는 머쓱했던 마음에 모른 척하고 조용히 설거지를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다양한 사람들한테 장단점이 존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친구들이 나에게 이어폰으로 노래를 같이 듣자고 해도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내 마음을 탓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정말 그랬으니까. 너무 부러웠고 듣고 싶었던 그 마음,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크던 사춘기 소녀였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그때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드릴 걸.. 후회가 된다.
앞으로 나의 분신 엄마에게 조금 더 따뜻한 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