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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Dec 22. 2022

운명을 믿어요

<사랑> 15.2x20.3 cm_ sharppencil, watercolor & acrylic on paper_ 2022_ 윤미내


건물 주차장 외진 곳의 천도복숭아 상자 안에 홀로 남겨 있던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를 처음 발견한 지인이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왔고, 혹시 키워 볼 마음이 있냐며 연락을 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개를 좋아했고 노견이 될 때까지 키워 본 경험은 있었지만,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무 지식도 경험도 없었다. 그리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날카로운 눈매나 울음소리,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몸의 유연성이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딸은 새끼 고양이 사진을 보더니 우리가 데려오자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오래전부터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고 싶어 했다. 나 또한 동물을 좋아하지만, 살림을 도맡아 하는 주부라는 직책이 있기에 일거리가 더 늘어난다는 우려가 앞섰다. 나는 평소 반려동물이 안 되는 사항을 1부터 10까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 주며 딸이 스스로 포기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중에는 펫샵에서 거래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이유도 있었는데, 생명을 물건처럼 고르는 일은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였다. 나는 열정적인 동물애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행위에 대해서는 늘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딸아이는 반려동물을 원하지만, 본인도 이 사항을 받아들이는지 실망 어린 표정으로 바람을 접고는 했다. 그런데 나는 설득이 성공적으로 통한 상황에서도 딸의 실망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해서 한 가지 희망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혹시 누군가 키우는 개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키워달라는 연락이 오거나, 우리 가족이 되길 원하는 반려동물이 운명처럼 다가온다면. 그때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운명을 믿어보자!




지인의 연락이 온 날, 딸의 성화와 내가 한 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 가족은 빠른 속도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사진 속 고양이가 있는 장소로 갔다. 그렇게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 우리는 정말 운명처럼 다가온 새끼 고양이에게 ‘destiny(운명)’를 줄여 ‘tiny 티니’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가족으로 맞이하였다.


발견하고 바로 수의사에게 데리고 갔을 때 티니는 태어난 지 약 3주 정도 된 수컷 고양이 같다고 했다. 수의사는 특별한 검사 없이 간단한 외관상의 진료만 마치고 3주 후에 티니를 다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나는 이 진료가 암묵적인 나에 대한 테스트같이 느껴졌다. 마치 수의사는 ‘3주 동안 이 어린 길냥이를 잘 키워서 데리고 오나 봅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린 길냥이들은 좋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기 쉽고, 더구나 어미가 데리고 가지 않고 남아있던 티니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고양이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냥이들을 쉽게 집으로 데리고 오기도 하지만, 또 쉽게 포기하기도 하니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머니 속 돈을 꺼내어 주고 산 것에는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만, 이렇게 마땅한 지불 없이 얻은 것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의사는 내가 티니를 건강하게 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고양이 엄마로서 도덕적 자질이 있는지 3주 동안 지켜보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주 된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젖병을 빨지 못했던 티니에게 주사기로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유식을 거쳐 사료를 스스로 먹기까지. 나는 티니가 ‘귀엽다’라는 생각보다는 ‘살리기’ 위한 막대한 책임감으로 키웠고, 지금은 건강한 고양이로 만들어 놨다.

어릴 때는 그저 동물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감정뿐이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그 감정보다는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앞선다. 집에서 키우다가 시들시들해지는 식물만 보아도 내가 무심했나, 아님 너무 과했나 하며 그 책임에 대해 곱씹어보고는 한다. 아마도 삶의 세계보다 죽음의 세계로 가까워지고 있는 불안에서 오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티니는 무럭무럭 자랐고, 나의 하나뿐인 고양이 아들로서 완전한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 마치 늦둥이 아이가 생긴 것처럼 티니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웃음이 절로 나고, 말썽을 피워놓아도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티니에게는 혀 짧은 소리로 존댓말을 쓰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딸아이는 말한다.

“어머니! 고양이 눈은 무섭다면서요? 걸을 때 발소리가 안 나서 섬뜩하다면서요?”


세상에 이렇게 투명하고 예쁜 빛깔의 눈을 가진 동물이 있을까 싶다. 또 섬세한 몸동작은 볼 때마다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놀랍게도 예전의 고양이에 대해 좋지 않았던 고정관념이 모조리 장점으로 뒤바뀌었다.

나는 티니를 통해 운명을 믿기로 했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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