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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Oct 12. 2022

이름을 고찰하는 시간

<쉼> 15.2x20.3 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2_ 윤미내


많은 사람과 나를 구별하는 것 중에는 ‘이름’이라는 것이 있다. 이름은 ‘성(姓)’과 그 아래 불리는 ‘이름’으로 나누어지고, 대게 한 번 정해지면 평생 나를 대표하며 불리기에 신중하게 짓는다. 그러나 막 태어난 아기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짓는 경우는 없으므로, 그 고심의 과정은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르게 되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몫이 된다.


내 이름은 윤미내 이다. 아름다울 미(美)와 안 내(內)의 한자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나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의 뜻도, 어감도, 받침이 없어 느껴지는 단출함도 마음에 든다.

다만, 약간의 불편한 점과 궁금증이 있었다.


불편한 점이라 할 것은 단번에 내 이름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도, 은행에서도, 병원에서도 한 번에 '윤미내'라고 쓰는 사람이 없어서 (윤민혜, 윤민애, 윤미네…) 여러 번 빗금이 처치거나 화이트로 수정해서 이름이 작성되고는 한다. 이제는 누군가 내 이름을 쓰려할 때면 “그냥 받침 없는 ‘미’에다 ‘ㄴ’하고 ‘ㅏ’, ‘ㅣ’에요.”라는 고정 멘트가 먼저 나오곤 한다.


이름에 대한 궁금한 부분은 이름보다 ‘성(姓)’에 있었다. 혈족을 나타내는 성은 보통 아버지의 것에서 계승되는데, 이건 어릴 적에 한 번쯤 의문을 품거나 질문했던 부분일 것이다. 나는 어릴 적에 아빠의 성만을 따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빠의 성이 싫거나 아빠가 싫어서가 아니라, 가족 중 혼자 다른 성을 가진 엄마가 외로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엄마를 위하는 생각이 그런 감정까지 들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땐 엄마의 성도 아이 이름에 넣어 내 이름을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요즘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 많아져, 아빠와 엄마의 성을 모두 넣어 지은 ‘이김OO, 김최OO, 강유OO’같은 이름을 접할 수 있다. 지금 내 딸의 이름도, 어릴 적의 다짐을 실현해 신랑의 성과 내 성을 함께 넣은 이름으로 지었다. 다만 주변의 누구도 부모의 성이 모두 들어있는 이름이라고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그건 아이 이름이 부모 모두의 성을 붙인 네 글자의 이름이 아니라 일반적인 세 글자 수의 이름이고, 부모의 성을 앞에 나란히 붙인 것이 아닌 엄마인 내 성은 이름의 뒤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 이름을 짓기 위해 신랑과 내 성을 나란히 앞에 두고 보았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짓고도 두 개의 성 뒤에 놓으니 어색하게 느껴졌다. 고민을 하던 중에 ‘성을 꼭 앞에 놓아야 하나? 외국 이름처럼 뒤로 갈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인 내 성을 이름의 뒤로 보냈다. 이 의미는 아빠와 엄마가 앞뒤로 든든하게 지켜주겠다는 뜻이 들어있기도 하다. 우리 가족끼리의 비밀스러움이 있는 이 이름을 다행히 딸은 좋아한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평범한 이름 같지만, 우리만의 특별한 암호 같은 느낌으로 자신의 이름을 즐기는 것 같다.



우리는 직접 고민하여 택한 것도 아닌 이름과 평생을 함께하고, 죽어서도 자신을 기억해 주는 유일무이한 것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듣고 쓰기만 할 뿐이지 직접 소리 내 부르는 경우도 많지 않은데 말이다. 만약에 이름에도 인격이 있다면, 그도 직접 나를 선택하여 내 이름이 된 것은 아닐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정 한번 없이 부지런히 나를 대표하고 나로 불리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운명을 함께하게 된 사이인데 기왕이면 이름이 좋은 곳에서 불리길 소망한다. 그리고 가끔은 삶 속에서 각자 이름의 뜻처럼 살고 있는지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기 권한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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