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vs 목소리
스마트폰은 사실 ‘손가락’의 혁명이라고도 볼 수 있다. 10개의 손가락과 손의 근육을 다 써야 했던 키보드가 아닌, ‘손가락 하나’만으로 내가 딛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사이버 세계에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은 인류에게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 후로 ‘음성’으로써 집의 조명을 켜주고 음식을 배달시켜주고 음악을 틀어주는 기술이 우리 삶에 들어오면서 ‘시리(Siri)야~’ 하고 음성명령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도래하였다.
따라서 <그녀>가 보여주는 세상이 우리에게 완전히 낯선 세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가까운 미래로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은 ‘목소리’로서 가상 세계에 접속하여 손가락이 아닌 음성으로 채팅을 하고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다만, 목소리는 손가락보다 그 사람에 대한 더 많은 데이터를 담고 있기에 손가락으로 교류하던 세상보다 나 자신을 더 많이 노출해야 한다.
또한 목소리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고유한’ 것이며, 비언어적 단서, 즉 호흡, 휴지(멈춤), 억양, 심지어 성격과 기질까지 담고 있기에 목소리만으로도 상대의 성별, 연령뿐 아니라 기분과 감정, 성격 등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설정은 사만다와 같은 운영체제가 감정에 대해 스스로 학습하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