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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Apr 01. 2023

퇴사를 잘한다는 것은

마침표를 잘 찍는 것과 같다

마지막 출근하는 날, 매니저와 사직서를 작성하고 나니 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피커 폰으로 하는 중인지 대표의 목소리도 함께 들린다. 마지막 날인데 휴무라 전화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면서 말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왠지 그동안의 힘들었던 순간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고객관리 차원이라는 우스갯소리조차 위로가 되었다. 왜인지 나쁜 기억과 감정보다 좋았던 것이 더 많이 떠오른다. 역시 인간의 기억은 왜곡이 심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힘든 순간마다 버티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후 4시 56분,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함께 일하던 P양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났다. 손에는 작은 종이백을 들고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언니! 언니 부담가지시라고 제가 편지 썼어요!


선물을 건네주고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평소에도 통통 튀는 매력이 있는 아이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았는데, 마지막 날에 이렇게 감동을 주다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7개월 중에 6개월을 함께 보낸 매니저와의 인사도 제법 깔끔했다. 가벼운 포옹도 함께 곁들이니 어색하지 않은 깔끔함이었다. 


남희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매니저님도 그동안 저와 일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니야, 괜찮아. 잘 지내고.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든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떠나는 것이 나에게도 그에게도 그가 필요한 그곳에도 더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모두 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래, 정말 잘한 일이다. 별일 없이 무사히 두 번째 마침표를 찍었으니 그동안 일하면서 쌓였던 묵은 감정도 마침표를 찍어 보내줘야지. 그래야 새로운 출발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P양의 선물과 손 편지


퇴사를 잘한다는 것은 이처럼 나쁘지 않은 관계와 상황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그 마침표를 잘 찍고 온 나를 칭찬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좋은 기억만

좋은 감정만

좋은 인연만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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