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 재스민(듀란타)
<2018.3.13>
작년에 이어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이전에 살던 분이 남겨 둔 화분이 작은 감동을 준다. 이 식물을 처음 보았을 때, 잎이 유난히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줄기도 플라스틱 색깔처럼 느껴져 '인조 식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순이 나고 잎을 낸다. 새로 난 잎은 다른 잎보다 좀 더 여린 연둣빛. 햇살 잘 드는 곳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작년에, 다롄의 마지막 집에 있었던 군자란처럼 꽃이라도 피웠더라면 내가 더 호들갑을 떨며 감동을 표현했을 것이다. 꽃은 없어도 베란다로 갈 때마다 쳐다보며 늘 신기하면서도 기특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명, 보이지 않지만 매일매일의 미세한 자람과 변화를 통해 표현되는 생명!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상기시키고 경외감을 주는 이 식물에게 고맙다~~.
위의 기록은 옌타이로 이사 가서 살게 된 집의 화분에서 자라고 있던 벤자민 나무에 관한 이야기이다.
* 기록에 언급된 군자란 이야기는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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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개학 후 출근길에 항상 지나가는 꽃집 앞에 놓인 화분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긴 가지에 난 초록 잎들 끝자락에 늘어져 피어 있는 보랏빛 꽃! 한 송이가 아니라 소담스러운 작은 꽃 여러 송이가 함께 모여 피어 있다. 보라색 '포도송이'를 닮았다.
"와! 이건 무슨 꽃이지? 잎을 보니 벤자민 나무인 것 같은데... 벤자민 나무에 꽃이 피어?" 혼잣말을 한다. 어김없이 사진을 찍어 두었다. 휴대폰 앨범에서 사진을 불러와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이 꽃나무의 이름은 바로 '밸런타인 재스민'. 정식 명칭은 듀란타인데, 밸런타인 재스민은 유통명이라 한다. 원산지는 브라질, 초코향이 나서 초코재스민라고도 불린다 한다. 아하, 초코향! 밸런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주고받으니 그렇게 연결되는구나! 따뜻한 온도를 좋아하고, 향기가 좋은 꽃에 “재스민”을 붙이는 경향이 있어 이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검색하여 이 식물의 이름을 읽는데, 벤자민 나무에 꽃이 피었다 혼자 생각했던 터에 '밸런타인 벤자민'이라고 읽었다. 벤자민 화분에 관한 글을 썼던 기억이 나서 위에 옮겨놓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밸런타인 벤자민이든 재스민이든 이름을 듣자마자 보랏빛 사랑?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밸런타인이라는 말은 나에게 헌신적인 나눔의 사랑이든 연인 간의 사랑이든 '사랑'을 연상시키는 단어이며, 이 꽃의 아름다운 색과 결합하여 '보랏빛 사랑'이라는 표현이 떠오른 것이다.
사랑은 무슨 색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대륙, 나라, 도시와 마을, 가정, 관계 곳곳에 존재하기에.
각 사람이 자신의 소우주안에서 맺고 있는 관계 안에서 느끼는 사랑의 색깔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색의 종류만큼 다양할 것이기에.
보랏빛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꽃의 색깔과 모여 핀 모습이 포도송이를 닮았으니, 눌려 짜내어져 포도즙이 되는 포도의 숙명을 생각하며 '희생과 헌신의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 보랏빛 사랑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성경 말씀 안에서 사람을 향한, 믿는 이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감상해 본다.
(요 13:1, RV)
유월절 전에,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셔서 아버지께로 가셔야 할 자기의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기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로 5:8, RV)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엡 5:2, RV)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시어, 달콤한 향기가 나는 예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행하십시오.
(요일 4:9, RV)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생명을 얻고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요일 4:10, RV)
사랑은 이렇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분의 아들을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로 보내신 것입니다.
(마 20:28, RV)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 자기 생명을 속전으로 주려고 온 것입니다.
이 보랏빛 사랑에 대한 나의 반향은 다만 감사하며 나도 그분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