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어쩔 거야?

- 살림남에 무료서비스까지

by 미나뵈뵈

가까이에 이런 사람이 있다.


1. 정리의 달인이라도 불러도 좋다. 작년부터 살고 있는 서울 17평 셋집에 보일러실은 '광'처럼 잡동사니를 두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 생활했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물건에 우리가 새로 더한 빈 상자, 두루마리 휴지, 우산함, 세제, 여행가방 등등. 이 모든 물건들이 다 바닥에 놓여 있었다. 대략 위치를 알고 있어 필요할 때 꺼낼 수만 있을 상태로.

어느 날, 이 사람이 검은색 3단 철제 앵글을 가져왔다. 한 30분 동안 정리하는 가 싶더니, '짜잔!' 각종 물건이 앵글 선반 위에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웃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벽에 걸린 붙임고리에 30개입 두루마리 휴지 손잡이를 걸어 벽 공간도 이용하고. '앵글' 하나로 이 공간이 이렇게 말끔해질 수 있는 거였구나!


2. 화장실에 필요한 여러 소품을 챙긴다. 화장실엔 세탁기가 들어가 있고 세면대 위 거울 아래에 기다란 선반이 설치되어 있다. 최근에 이 사람이 철제 선반(30센티 길이의) 두 개를 주문했다. 지금껏 세탁기 아래쪽 바닥에 세탁세제와 유연제 통이 놓여있었다. 세탁기에 세제를 부으려면 매번 허리를 숙여야 했다. 선반 하나를 변기의 수조 위쪽에 놓아 거기에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두었다. 와우! 이거 기발한대요! 허리 안 숙여도 되겠네요!


다른 선반 하나는 샤워기 위쪽 벽에 고정시켜 샴푸와 바디워시, 풋샴푸, 바디크림등을 올려놓았다. 거울 아래 있는 기다란 대리석 선반에 너무 많은 게 올려져 있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하면서. 또 샴푸와 바디워시 통이 너무 무겁다고 소분용 통 구입해서 덜어내어 샤워기 위 선반에 비치하였다.


봄엔 은 환풍기를 사서 화장실 작은 창문 창틀에 끼워 넣어 주었고, 여름이 되자 초파리 트랩을 사서 올려두었다. 지난겨울엔 씻을 때 화장실 안 공기가 너무 차갑다고 온풍기를 사서 벽에 부착해 주었다.


3. 천 원 샾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다양한 물건들, 눈여겨 두었다가 필요할 때 잘 찾아 요긴하게 사용할 줄 안다. 지난 주말에 큰 아이 방에 걸린 긴 커튼을 좀 더 짧은 것으로 교체해 주었다. 너무 길어 방바닥에 놓인 침대 매트리스까지 내려와 잘 때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다음 날 아침, 선풍기 바람에 짧은 커튼이 펄럭여 아침 햇살이 자고 있는 큰 아이의 아침잠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이 사람이 천 원 샾에 가서 사 온 것은 강력 자석 고정 세트! 커튼 뒤쪽 창틀에 평평한 철판 스티커를 붙이고, 커튼 위에는 강력 자석으로 눌러 절대 바람에 들릴 일 없게 고정시켰다.


4. 잘 때 빼고는 쉬지 않고 바지런히 무언가를 한다. 조용한 집에서 이곳저곳 오가는 이 사람의 발소리는 아내의 귀에 아주 익숙하다. 무엇이 필요하다, 고장 났다 하면 꼭 기억해 두었다가 사다 주거나 해결을 한다. 집안 곳곳에 멀티탭을 사다가 설치하고, 거실 시계가 고장 나 안 간다고 하니 바로 주문하여 다음날 새 시계가 도착하게 한다. 전등이 나가면 전등을 갈고, 전등이 너무 어두우면 밝은 것으로 교체한다.


5. 집을 살피는 감각이 예민하다. 이 집이 은근히 습하다고 '제습기'를 구입해 주었다. 지난겨울에 바깥 기온과 방 안 기온 차이로 벽에 곰팡이가 핀 것을 발견하고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면서 열심히 닦아냈다. 에어컨이나 제습기를 원격으로 제어해 주기도 하고, 밖에서 연락해 틀고 끄라고 말해 주기도 한다.


6. 자진하여 침구류 챙기기를 담당한다. 볕이 좋을 땐 주기적으로 이불을 햇빛에 말린다(몇 년 전 중국에서 생활할 때, 아파트 정원이나 옥상에 빨랫줄이 걸려 있어 이용할 수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침구류를 점검하고 교체한다. 겨울 이불을 거두고 여름 이불을 꺼내려고 할 때, 작년에 우리가 어떤 이불을 덮고 잤는지, 식구 수와 이불 개수가 맞는지, 새로 구입이 필요한지 여부를 점검한다. 이불을 교체하기 전에 이불커버를 벗겨 세탁하고 건조하여 압축팩에 압축해 넣어 둔다.


7. 집안일 중 빨래와 청소를 도맡아 한다. 화장실을 주기적으로 청소하는데, 매직폼블럭을 이용하여 세면대와 세숫대야 등을 닦고 , 바닥은 솔로 빡빡. 청소 후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곳곳이 반짝반짝하다. 가전제품 중 청소기나 세탁기, 건조기 등을 구입할 때 아주 신중하다. 꼼꼼하게 비교분석 후 최적의 것으로 구입한다. 주로 본인이 사용할 것이기에.


8. 한 달에 한 번씩 아내에게 '머리 염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내가 이 사람과 산 세월이 20년도 넘어 이 사람에 대하여 쓰자면 여러 각도에서 쓸 말이 많지만, 살림남의 면모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일들로만 몇 가지 적어 보았다. 1~7번까지만으로도 아내는 충분히 인상받고 고맙게 느끼지만, 아내가 요즘 가장 감동받는 부분은 8번이다.


머리 염색은 주로 한 달에 한 번씩 한다. 흰머리가 뿌리부터 자라 나오고, 염색약 기운이 빠져 머리카락 색이 연갈색이 되어갈 때, 저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아내는 작은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남편이 염색을 해주기 시작하여 아내는 든든하다. 화장실에 간이 의자 놓고 비닐 덮개 어깨에 씌우고 앉아 있으면, '쓱쓱쓱' 노련한 손놀림으로 머리 곳곳에 염색약을 발라준다.


서비스를 받는 내내 그리고 '끝!' 하고 서비스를 마친 순간에도 아내는 무척 흐뭇하다. 나이 들어 머리카락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수많은 흰머리, 솔직히 남편에게 보여주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남편이 보기 흉하다고 느낄까 봐.... 하지만 아내의 마음과 상관없이 처음 해 주고 나서 두 번째 때부터는 '나 아주 잘하는데!'라고 자신을 대견해하면서 즐겁게 염색해 주는 이 사람. 귀찮다 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정성껏 무료 염색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이 사람.


이 사람의 따뜻함과 친절함을 어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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