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내 인생은 끝났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다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질 뻔한 적이 벌써 여러 번.
구조물에 부딪혀 균형을 잃자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다가도, 잡고 있던 스마트폰을 떨어뜨리지 않은 자신의 순발력에 감탄하며 바로 연락하던 친구에게 이 사실을 전달한다.
'나 지금 걷다가 넘어질뻔함'
친구가 웃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조심좀해'
배너에 알림이 뜨기로,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친구의 메시지가 왔다고 한다. 바로 누른다. 아직 걷고 있다. 버스를 타러 가는 중인데, 몇 분 남았을까? 잠깐 확인한다. 도착 5분 전이라고 한다. 시간이 충분하네. 뛰지 않고 마저 걷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눈은 휴대폰의 밝기가 낮은 화면에 고정하고, 인스타그램을 누른다.
친구의 연락을 보기 위해 켰지만 수많은 스토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초록색 원을 누른다. 친한 친구에게만 공개하는 스토리. 내용을 확인한다.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구나. 재미있는 내용이거나 귀여운 스토리에 하트를 누른다. 나머진 전부 넘긴다. 뭐 하려고 켰더라?
아 맞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었다.
버스에 탄다. 착석한 사람이든, 고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든 신호가 하나 걸리기 전에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나도 똑같다. 햇빛이 드리운다. 그렇지만 알 턱이 없다.
유튜브 보고 있거든.
손바닥만 한, 또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스마트폰은 저희를 참 잘도 들었다 놨다 한다. 나는 그리 잘 놀라는 사람이 아닌데,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집에 잠시 두고 나왔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식은땀이 날 정도다. 애초에 그럴 일은 내겐 잘 없다.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 집을 나서기 때문에, 헤드폰과 휴대폰을 챙기는 것은 기정사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보다가 신호를 놓치는 사람들이 많아 이제는 땅바닥에서 신호가 반짝인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꼭 몇 박자 늦게 출발한다. 눈앞의 휴대폰에 주의를 앗아가는 움직이는 신호들이 너무 많아, 시야에 들어오는 불빛조차도 파악하기 어려운가 보다.
인간의 뇌는 움직이는 물체에 집중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야 위협을 미리 감지하고 몸을 피하거나 성공적으로 사냥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현재, 더는 사냥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깜빡이는 픽셀에 주의를 빼앗긴다. 마치 함정에 걸린 것처럼, 누군가 틀어놓은 영상에 눈이 피곤해도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 영상은 끝이 없다. 다음, 그다음 영상으로 바로 이어진다. 또는 짧은 하나의 영상이 계속 반복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럼 다시 눈은 고정.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우리 뇌는 더 이상 쉬지 못한다. 물리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스크린에 눈이 고정된 덕분에, 뇌는 계속 일해야 한다. 잠을 잠으로써 드디어 좀 쉬나 했지만 글쎄. 잠자기 바로 직전까지도 보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새어 나온 그 빛이 그마저도 쉽지 않게 만든다.
몇 시간을 자든 피곤하다. 정말 그렇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언제부턴가 항상 안개 낀 양 집중이 어렵다. 나만 그런 것일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경험해 보았을까?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는 집중력을 빼앗겼다. 혼란과 어지러움은 우리의 일상이 되어, 뇌의 휴식와 고요함을 앗아갔다.
몰입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다. 정말 몰입했을 때는 휴대폰을 두고 다닌 적도 있었다. 내 부주의함도 한몫했겠지만, 사소한 부분에 까지 주의를 쏟을 수 있는 자원 없이 온전히 하나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몰입한 하나의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종점부터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마치 찰나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
그런 때가 있었다. 이젠 아득하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나는 꼭 알아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거기서부터 이 여정을 시작해보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여정을 위해 나는 다시 화면에 집중한다.
최근 도서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고 여러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후 글에서 문제적 대화형 미디어 사용(Problematic Interactive Media Use 이하 PIMU)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단순히 미디어의 중독적 사용에 대해서 겉핥기식으로 정의를 다루기보다, 실제로 경험한 내용을 중심으로 학술적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제 스스로도 이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집중력과 기기에 대한 통제감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