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월의 그레이스에게
그레이스,
나는 지금 네가 남겨둔 작은 기록장을 펼쳐보고 있다. 거기에는 불안과 매일 나눈 짧은 대화 노트가 차곡차곡 적혀 있었다.
단 한 줄뿐인 기록이었지만, 그 한 줄들이 모여 너의 하루를 붙잡아 주었고, 그 하루가 모여 결국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었다.
Day 1
오늘 내 불안이 나에게 해준 말은 “너는 늘 늦을지도 몰라”였다.
나는 그 말을 “서두르지 말고 네 호흡에 맞추어 걸으라는 배려”로 받아들였다.
Day 2
오늘 내 불안이 나에게 해준 말은 “남들과 비교하면 너는 부족해”였다.
나는 그 말을 “너의 속도와 길을 확인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Day 3
오늘 내 불안이 나에게 해준 말은 “이 선택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어”였다.
나는 그 말을 “실패해도 배울 수 있다는 용기의 초대”로 받아들였다.
(근데 더이상 실패하면 안되는 나이니까 더 신중하자)라는 추신 메세지도 ..
그레이스,
너는 이 짧은 노트들을 쓰며 불안을 적으로 두지 않았어.
오히려 불안을 ‘나를 지키려는 파수꾼’으로 받아들였지.
나는 그 순간의 너를 기억한다. 펜을 들고 잠시 멈추어, 불안을 바라보던 네 얼굴에 담겨 있던 진지한 빛을.
지금의 나는 안다.
그 노트들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선택 앞에서 흔들리던 너를 단단히 묶어주던 닻이었고,
결국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끈 조용한 나침반이었다는 것을.
너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고 있구나.
“내 불안의 이름은 무엇일까?”
그 질문 앞에 멈춰 서 있는 너를 보며, 나는 다시 조용히 답을 건네본다.
너의 불안은 세 갈래로 흩어져 있다.
손실의 두려움: 지금 가진 것(시간, 돈, 관계)을 잃게 될까 하는 염려.
비교의 그림자: 남들은 앞서 가는데 나는 뒤처진 게 아닐까 하는 초조함.
실패의 상처: 선택이 틀렸다고 증명되는 순간을 맞이할까 하는 두려움.
세 가지 모두가 뒤엉켜 있겠지만,
네 안에서는 특히 비교의 불안이 크게 울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더 빨리, 더 똑똑하게 선택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머뭇거릴까?”
그 속삭임이 너를 자주 붙잡았지.
이 불안은 두 얼굴을 가졌다.
신호일 때: “조심해, 성급하게 서두르지 마. 너에게 맞는 길을 찾을 시간을 가지렴.” 그림자일 때: “너는 늘 늦어. 결국 잘못될 거야. 그러니 아예 시도하지 마.”
불안은 원래 네 편이었다.
하지만 네가 그것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면, 신호가 그림자로 변해 너를 가두곤 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불안의 언어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불안이 말하는 진짜 뜻은 언제나,
“너의 선택을 더 신중히 다듬어라”라는 것뿐이었다.
그렇다. 불안은 이렇게 말할 거야.
“나는 너의 적이 아니야. 나는 네 안의 파수꾼이야.
네가 함부로 다치지 않게, 네가 준비되지 않은 길에 뛰어들지 않게,
그래서 너를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어.
하지만 나를 지나치게 키우면, 나는 울타리가 아니라 감옥이 될 수 있어.
그러니 나를 적당히 들어주고, 적당히 흘려보내라.
나는 너의 용기를 시험하는 그림자가 아니라,
네 용기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배경일 뿐이야.”
그레이스,
불안은 늘 네 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알지? 불안은 네가 쓰러지길 바라지 않아.
오히려 네가 서 있기를, 네가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은밀한 동행자일 뿐이야.
그러니 오늘도 작은 노트를 열어라.
“오늘 내 불안이 나에게 해준 말은 ___였다.
나는 그 말을 ___으로 받아들였다.”
이 한 줄이 너의 좌표를 다시 세워줄 것이다.
나는 10년 뒤의 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다.
지금의 불안은 과거의 나를 탓한다고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과거는 이미 지나간 장면일 뿐, 앞으로를 선택하는 힘은 언제나 현재의 너에게 달려 있었다.
자책 대신 질문을 품어라.
좌절 대신 실험을 해보아라.
망설임 대신 기록을 남겨라.
불안은 네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자, 네가 진짜 원하는 방향을 찾으라는 초대장이다.
그리고 꼭 기억하라.
선택은 결과가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는 과정임을.
늘 너의 곁에서,
2035년의 그레이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