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진단명, 우울에피소드

첫 진료의 기록

by 김마음


갑자기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 슬며시 발밑부터 물에 잠기듯 우울에 젖어들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물먹은 이불솜처럼 무거워졌고, 계단 한 발짝 오르기도 버거울 만큼 온몸의 기운이 스러져갔다. 결국 밥 한술 삼키기도 어려울 지경이 되어서야 내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24.01.08. 정신건강의학과 첫 진료의 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사뭇 떨리고 긴장됐다. 요즘 시대에 흔한 일이라고,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여도 봤지만 아랑곳없이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색한 대기 시간을 지나고 마침내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나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병원에 가는 길 내내 마음을 짓누른 걱정과 두려움,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슬픔과 서러움 등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무릎 위로 쏟아졌다. 멈추고 싶었지만 좀처럼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사 선생님께는 익숙한 인듯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울음과 함께 끝난 첫 진료에서 나는 3가지 진단명을 받았다.

- F329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

- F419 상세불명의 불안장애

- F510 비기질성 불면증


진료를 마치고 수면제와 몇 개의 알약을 처방받았다. 정신건강의학과는 특이한 곳이었다. 약을 병원 창구 내에서 조제해 주셨고 약 봉투에는 정신과라는 단어가 쓰여있지 않았다. 이게 나름대로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배려인 걸까 싶었다. 그럼에도 약 봉투를 들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나는 괜스레 조금 쪼그라들었다. 아픈데도 이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눈치 보고 있다니, '내가 아직 덜 아픈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날의 나를 많이 칭찬했다. 치료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는 점, 실제로 몸을 움직여 병원에 갔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찬받아야 했다. 내 인생에 없을 것만 같았던 시간을 잘 견뎌내어 대견한 하루였다.


아직은 모든 것이 두렵고 자신 없어 웅크리고 있지만 이내 다시 당당해질 것임을 알기에, 해사하게 활짝 피어날 그날의 나를 한번 기다려보기로 했다. 더없이 애잔한 나를 든든히 응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