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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n 03. 2020

순수하게 시작한 사랑, 어른스럽게 유지하기

유승현 중앙대 심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사랑을 하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그리고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사랑은 편합니다.
사랑은 따뜻합니다.
사랑은 자유롭습니다.
사랑은 아이처럼 순수합니다.
사랑은 다른 의도가 없습니다.
- 혜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


흔히 “사랑을 하면 아이가 된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할 때만큼은 머릿속에 가득했던 현실에 대한 걱정마저 모두 날아가고 그 사람과 자신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빠져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놀랍게도 실제로 사랑을 시작할 때는 우리 뇌 중 ‘아이일 때부터 존재했던’ 뇌의 영역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즉, 우리는 어린아이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의 유지를 위해서는 ‘어른의 뇌’가 꼭 필요합니다. 사랑은 ‘사랑’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토스니 박사를 알려주는 사랑과 뇌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Stosny 2018a; 2018b).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1879년에 그린 작품. 자신이 잘 아는 라 투이 레스토랑에서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담았다.

아이의 뇌


우리의 뇌 영역 중 3세 경이 되면 발달이 완료되는 변연계(limbic systemtoddler brain) 영역을 소위 ‘아이의 뇌(toddler brain)’라고 합니다. 이 영역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기능은 ‘알람 시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보거나, 문제를 해결하거나, 안전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아이가 느끼는 부정적 정서는 이러한 일들을 대신해줄 어른들을 부르는 알람 시계의 역할을 합니다.


부정적 정서를 포함한 모든 알람 체계는 오작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집이 불에 탈 때까지 울리지 않는 화재경보기보다는 약간의 연기에도 울리는 화재경보기가 더 낫습니다. 설령 누군가 요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도 작동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뇌’는 화재경보를 ‘불이 났을 수도 있다는 신호’가 아닌 ‘불이 났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아이의 뇌’가 보내는 정서적 알람이 실제 현실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화재경보음을 듣자마자 “우리는 다 죽을 거야!”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오류를 일으킵니다.


어른의 뇌


‘아이의 뇌’가 있다면 ‘어른의 뇌(adult brain)’도 있습니다. 전전두엽 피질은 30세까지도 완전히 발달하지 않는 영역이며, 이 영역은 화재경보가 울리면 실제로 불이 났는지 혹은 요리 중에 발생한 연기 때문인지를 확인합니다. 만약 실제로 불이 났다면,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끄는 데 집중합니다. ‘어른의 뇌’ 속에서 우리는 정서를 중요한 신호로 보고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 정서를 현실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부정적 정서는 현실의 확인(정말 불이 났어?)과 개선을 위한 계획(그렇다면 불을 어떻게 끄지?)에 의해 조절됩니다. 이와 더불어 평가, 계산, 판단, 정서나 충동에 대한 자기조절,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 상태를 반영하는 능력(이를 심리학자들은 theory of mind라고 부릅니다) 등을 가진 ‘어른의 뇌’는 경험을 해석 및 설명하고 – 이것이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이유야 – 행동에 대한 계획을 도출합니다 – 나는 앞으로 내 기분이 나아지게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할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관계에 있어 ‘어른의 뇌’는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사람과 물건, 그리고 생각을 감상, 시간, 에너지, 노력 및 희생의 대상으로 둘 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어른의 뇌’는 우리의 삶의 의미를 구성합니다.


아이의 뇌 vs. 어른의 뇌


‘아이의 뇌’는 충동적이고,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관계 속에서 권력을 얻고자 합니다.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의 뇌’는 ‘다냐 아니냐(all or nothing) 흑백논리(black-and-white thinking)적 사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분 좋을 때 너는 항상 좋은 사람이고, 내가 기분 나쁠 때는 너는 항상 나쁜 사람이야.

내가 생기 넘칠 때 너는 흥미로운 사람이고, 내가 지루할 때 너는 멍청한 사람이야.


반면 ‘어른의 뇌’는 부정적 정서와 충동을 조절하고, 즐거움과 실망을 통합시키고, 자신의 관점과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른의 뇌’를 통해 계획을 세우고, 믿을 만한 증거에 무게를 싣고, 좋은 판단을 내리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른의 뇌’는 발달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불리한 면을 가집니다. ‘어른의 뇌’가 작동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아이의 뇌’가 알람이 울렸을 때에 대한 나름의 대처 방안(주로 비난, 부인, 혹은 회피)을 형성하고 난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아이의 뇌’를 통해 수없이 강화된 신경 패턴은 ‘어른의 뇌’의 보다 복잡한 인지 과정을 가로채 기존의 습관화된 방식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어른의 뇌’가 작동했다면 현실에 대한 평가와 함께 ‘아이의 뇌’의 알람을 수정했겠지만, ‘아이의 뇌’의 방식이 작동하게 되면 전전두엽 피질은 ‘아이의 뇌’의 알람을 승인하고 다음과 같이 과민반응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만약 내가 화가 난다면, 그건 네가 뭔가 잘못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만약 내가 불안하다면, 이건 네가 나를 두렵게 하거나 거부하거나 조종하고 있다는 거야.

만약 내가 불안정하다면, 너는 나를 실망하게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아이의 뇌’는 사랑에 빠지고, ‘어른의 뇌’는 사랑을 유지한다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는 ‘아이의 뇌’가 작동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뇌’로 하는 사랑은 처음에는 경이로움과 기쁨으로 가득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과 타인의 관점에서 보는 능력의 결여로 인해 필연적으로 갈등과 고통에 이르게 됩니다. ‘아이의 뇌’로 사랑을 하는 이들은 연인에게 자신의 취약점을 반영하지 않는 흥미나 취향, 취약점을 가졌다는 사실이 나쁜 것이라고 느끼도록 만듭니다. ‘아이의 뇌’로 하는 사랑의 대부분은 파트너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내포한 불평불만을 하도록 만듭니다: “너는 나와 더 닮아야 해. 내가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느껴야 해.”


친밀감을 그들의 파트너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과 혼동하게 되면서, ‘아이의 뇌’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파트너가 고유한 개인으로써 생각하거나 행동할 때 그에게 거절당하거나 배신당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어른의 뇌’입니다. ‘어른의 뇌’로 하는 사랑은 파트너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공감, 친절, 배려와 같은 우리의 가장 깊고 인간적인 가치를 통해 유지됩니다. 사랑에 빠진 어른들에게 상대방을 보호하는 것은 자신이 보호받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양쪽의 관점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눈 갖기


어른스러운 사랑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관점 옆에 파트너의 관점을 두고 파트너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관계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만이 상호작용과 관계 전반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한쪽의 관점이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상대의 관점을 함께 볼 수 없다면 이는 불완전한 그림일 뿐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관점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파트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통해 당신의 관점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어른의 뇌’라고 불리는 전전두엽 피질의 위쪽 아주 작은 부분만이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데 관여하는데, 그마저 정서적 각성 동안에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부정적 정서는 상대방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분노할 때, 우리는 속으로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거나, 이용당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상대방은 우리를 비열하고, 불친절하고, 까다롭고, 불공평한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만약 파트너와의 상호작용 중에 당신의 파트너가 당신을 잘못 이해한다면, 당신의 ‘아이의 뇌’가 비난, 부인, 회피, 분노 등의 방법으로 당신의 취약점을 방어하도록 하는 대신 죄책감, 수치, 슬픔, 공포와 같은 내면의 취약점을 파트너에게 표현해야 합니다.


각자의 정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당신과 당신의 파트너를 하나로 묶어 두는 정서적 유대는 감정의 전염과 호혜성의 통로로 작용합니다. 만약 당신의 파트너가 어떠한 감정을 느낀다면, 당신은 저절로 그와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그 정서가 부정적이라면, 당신이 ‘아이의 뇌’로 돌아가 당신이 공유하고 있는 그 정서를 파트너의 탓으로 돌리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 지금 답답해. 그건 네가 답답한 사람이라는 뜻이야.”

“나 지금 거절당하는 것 같아. 네가 비열하거나 냉정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나 지금 통제당하는 것 같은데. 너는 왜 나를 통제하지 못해 안달이니?”


이러한 거짓 지각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파트너를 방어적으로 만들고, 최악의 경우 둘 사이의 정서적인 유대감 자체를 약화할 수 있습니다.


파트너의 관점과 자신의 관점을 나란히 놓는 것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파트너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고, 그를 통해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 지금 답답해. 이건 당신도 답답하다는 뜻이구나.”

“나 지금 거절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당신 지금 압도되었거나 정신이 산만해진 거야?”

“나 통제당하는 것 같은데. 당신 지금 불안하구나.”


이와 같은 말들은 파트너로부터 방어나 반격보다는 공감을 끌어내도록 합니다.

‘아이의 뇌’로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취약한 정서를 파트너의 탓으로 돌립니다: “당신은 나를 너무 화나게 해.” 반면 ‘어른의 뇌’로 자신과 파트너의 관점을 나란히 보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불안, 공포, 수치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파트너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나 지금 꽤 불안해. 그리고 나는 당신도 불안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우리는 둘 다 괜찮다고 느낄 수 있을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거야.”


내가 취약점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파트너가 느꼈을 불편함을 알게 되는 것은 공감과 협동심을 가질 기회를 줍니다. 이는 서로를 문제 삼는 대신 문제의 해결에 있어 당신과 파트너를 같은 편에 서도록 해줍니다. 나쁜 일을 서로 탓하기보다는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듭니다.


아이의 뇌가 필요할 때 


어른이 되어 세상의 복잡함 속에 요령껏 끼어 사는 우리에게 ‘사랑’이란 ‘사랑’만으로는 할 수 없는 무언가일지 모릅니다. 나의 주변 상황, 상대방의 주변 상황 등 어른의 뇌로 생각하고 조정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려면, 모든 걸 다 잊고 ‘사랑’ 하나만을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 위해 비교적 단순한 아이의 뇌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순수함과 실행력을 가지고 돌진해 상대와 마음을 확인하고 나면, 그때 다시 어른으로 돌아가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너무 오래 아이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요. mind


    <참고문헌>  

Steven Stosny (2018.02.07), “The Brain in Love”, Psychology Today

Steven Stosny (2018.05.23), “The Key to Have an Adult Relationship”, Psychology Today

혜민 (2012),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쌤앤파커스, 179쪽


유승현 중앙대 심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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