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어느 날 (2)
그러던 어느 날 밤, 또 다시 제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걱정한 대로 발신인 이름은 어머니였고, 급히 전화를 받으니 또 경비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번처럼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곤 곧바로 어머니 댁으로 향했습니다.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집이 어디인지, 도어락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한 상태로 길을 헤매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발견되었고, 경비 아저씨는 어머니 휴대폰에 저장된 단축번호 덕분에 저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잠시 시간이 흐르자 어머니는 안정을 되찾으셨고, 기억도 하나씩 돌아왔습니다.
벌써 두번째 똑같은 일이 벌어진터라 도저히 어머니를 집에 놔두고 올 수가 없었고, 우리 집에 가자고 말씀을 드리자 순순히 따라 나서시더군요.
아마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어머니가 주무실 방을 정리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안정을 찾으셨는지 아무런 이상없이 일상적인 대화를 한동안 나누시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어머니나 저희나 모두 조금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죠.
어머니는 아침까지 푹 주무셨습니다.
아침이 눈을 뜨시더니 예상대로 집에 가시겠다고 성화를 부리셨습니다.
어머니는 평안도가 고향인 실향민이신데, 일흔 살이 될 때까지 일을 하셨고 잠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는 열정적인 분이었거든요.
구십이 다 되어서도 길을 걸으실 때는 저보다 빨리 걸으셨고,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려고 깜빡이는 걸 보시고도 기어코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가는 그런 분이었으니까요.
걱정이 되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으셨기에 집에 모셔다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나 아내는 출근을 해야 했고, 낮에는 집에 아무도 없으니 어머니를 저희 집에 머무르시게 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집에 모셔다 드리고 절대로 외출하시지 말라고 당부를 하곤 회사로 향했습니다.
일이 바빠 회사에 출근을 하였지만 하루 종일 걱정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끔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집에 계신 것을 확인하곤 했지만 안심을 할 수 없었죠.
저녁이 되자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면서 어머니 댁에 가서 어머니와 같이 자고 오겠다고요.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나도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어머니를 돌보는 것보다 도대체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가 치매일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도어락 비밀번호같이 사소한 몇 가지 기억을 잊으신 것 빼고는 전혀 이상이 없으셨거든요.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차마 치매라는 생각을 하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죽음보다 무섭다는 치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일요일만 빼고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나가고 계셨습니다.
노인주간보호센터는 신체나 정신에 장애가 있는 어르신들을 오전 9시경부터 저녁 6시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사설 복지기관인데, 마침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 어머니 친구분께서 그곳을 나가시면서 어머니도 같이 나가고 싶다고 하셔서 보내드리고 있었거든요.
적잖은 돈이 들었지만 그래도 또래 친구분들이 많이 계신 곳이다보니 계속 나가고 싶어하시기에 보내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무작정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보호센터에는 치매증상이 있는 어르신들도 많이 있으셔서 직원들도 경험이 많았기에 저를 걱정해 주며 이것 저것 친절하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일단 빨리 서둘러야 할 일은 두 가지 정도 되더군요.
어머니를 모시고 정신과 병원에 가서 진단 받아보기.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에 장애등급 신청하기...
두 가지 다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정신과라니...
그리고 웬 장애등급? 보호센터의 직원들은 어머니가 치매 증상이 있다고 확신하는 듯 했습니다.
그제야 공포가 밀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