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읽어주는 세상 이야기
직장생활 스트레스 1위는 상하관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롤모델이 될 정도이며, 나의 미래와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상사를 기대한다. 나의 특성과 상태를 고려해주고, 긍정적 지지와 관심에 기반한 인정과 칭찬을 통해 내적 동기와 자발성이 샘솟게 만들어주는, 그런 상사를 원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기대 자체가 과도한 희망인 경우가 많다. 특히 이와 같은 과도한 희망과 기대는 ‘그나마 좋은 편인 상사’에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혹은 회사 내 가장 중요한 관계 중 하나인 상하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족을 초래할 수 있다. 상사와는 왜 사이가 좋기 어려울 것일까?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야 하거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항상 불편하다. 왜냐하면 나의 내적 요구나 원하는 바가 좌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에는 서로 다른 요구와 기대를 가진 사람들을 조율하고 통합해야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이 바로 리더이고 상사인 것이다.
즉, 리더는 조직 구성원들 간의 다양한 요구나 기대를 잘 조율하고, 조직의 방향이나 비즈니스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모두 합심해 일할 수 있도록 가이드하는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상황 상 구성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기대와 요구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기대와 요구는 분명히 서로 다를 것이다. 심지어는 각자의 기대와 요구가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리더는 이와 같은 상황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주요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역할 상 어느 누군가의 요구나 기대를 접게 만들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문제를 감당해야 하기도 한다.
이를 다시금 구성원의 입장에서 보면, 리더 혹은 상사는 어느 정도 내 요구와 기대를 좌절시킬 수밖에 없는 사람이며, 본인 자신도 조직 생활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과 수용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직장생활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집단에서 나타나는 필수적 과정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상사나 리더 중에는 이와 같은 자신의 역할이나 책임에 대하여 명확하게 인지 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이와 같은 복잡한 역할을 인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관련된 스킬이나 노하우를 학습하고 개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리더는 리더대로 힘들고, 구성원은 구성원대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단체 생활 혹은 조직 생활인 것이다.
최근 CCTV라는 것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와 같은 CCTV가 범죄예방 등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하며 실제 유용하게 활용된 사례들도 많다. 반면에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침해하고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불편하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하긴, 만약 누군가가 항상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면서 행동 하나하나를 모니터링한다고 하면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그 누군가가 내 행동에 대해서 계속 코멘트와 잔소리를 한다면 더욱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받지 않겠는가?
이처럼 누군가가 나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에는 선생님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며, 부모의 통제나 간섭은 중2병이라는 심각한 리액션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가 나의 행동이나 일하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조직 내에서의 생활이란, 혹은 공동체 생활이란 어느 정도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그것을 주요 업무(?!)로 하는 나의 상사가 편할 리가 없다. 게다가 이와 같은 나의 내적인 불편감을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않은 채, 너무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과도하게 모니터링하고 간섭하는 느낌이 든다면 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인사드리려고 찾아뵙는 날이면, 엄청나게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가는 날이면, 평상시에 입지도 않았던 정장을 빼 입고 다소곳하고 공손한 말투로 대답하려고 애쓴다. 맘에 드는 이성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즉,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고자 한다.
이처럼 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상황은 그 자체가 긴장을 유발하고 불편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자 친구의 아버지나 입사를 위한 면접, 그리고 이성과의 데이트 등은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주관적으로는 덜 불편하다고 느껴지며, 좋은 마음으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불편한 것은 아니다. 불편하고 긴장되지만 감수하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평가는 긴장감과 불편감을 유발하며,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내적인 스트레스와 심리적 에너지 소진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의 상사란 나의 행동에 대해 관찰하는 것 이상으로, 그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고 점수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는 나의 고과를 결정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업무적 측면에서의 상사가 하는 평판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나의 행동과 업무 수행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모니터링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하여 점수를 매기고 평가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긴장되고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와 같은 필연적인 상황을 우선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를 모니터링하고 간섭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회사를 다니지 말고 자기 사업을 하면 된다. 그리고 직원들을 뽑아서 그들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리더의 역할만 하면 된다. 그것도 싫다면 정말 혼자서만 일하는 1인 기업을 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 1인 기업은 관찰당하지 않고 평가받지 않을 것 같은가? 어찌 되었건 고객들은 나를 평가하며, 그에 따라 일을 같이 하거나 말거나 하는 결정을 내린다. 오히려 함께 생활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던 과정에서, 개인적인 사정이나 성향을 이해한 채로 평가를 받는 직장생활에 비하여 더욱 냉정하게 평가받을지도 모른다.
이나 저나 외딴섬에 홀로 살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관찰이나 평가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인정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즉, 이 조직에서 내가 일을 함으로써 성취와 만족을 얻으며, 그를 통해 급여를 받아 나와 내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재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 어느 것이 좋은 점만 있겠는가, 거기에 따르는 의무와 부담감이라는 것도 따라오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얻을 수 있고 성취하는 것과 감수해야 할 불편감 간의 균형적 사고가 필요하다.
상사와의 관계 상 발생하는 불편감에만 방점을 두면 더욱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상사가 아주 성숙하고 배려가 깊을 것이라는 비합리적인 기대도 줄여라. 이나저나 상사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솔직히 당신 스스로도 상사가 원하는 대로 전적으로 따라주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기대와 현실적인 만족으로 이 상황을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인 것이다.
이도 저도 싫다면? 그럼 상사를 해라. ‘서러우면 상사해라!’라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이다. 단, 리더나 상사가 감당해야 할 보이지 않았던 의무와 책임도 맡아야 한다는 점 또한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