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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박사 레오 Apr 05. 2021

우리는 갈등과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정신건강 전문가이기 때문에 저는 사람들의 모든 사람들의 심리적 안녕과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심리적 안녕과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을 저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거입니다. 

선거 때가 되면 잠재되어 있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극대화되고 상호 간의 비방과 공격이 난무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편치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치를 혐오하기도 하며 피하려고 함과 동시에 성숙하고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합니다. 



1. 비합리적 & 비현실적 기대와 희망을 버리라


얼마 전 한 강의에서 교육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행복이란?'이라는 질문으로 행복을 정의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답변들이 나왔습니다. 

그중 다음과 같은 답변들이 있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것'

'삶에 만족과 즐거움이 가득한 것'

'아무런 고민과 걱정이 없는 상태'

'편안하고 여유로움'


이와 같은 각자의 정의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이와 같은 때가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얼마나(몇 번? & 어느 정도의 기간?) 이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정의처럼 '삶의 만족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아무런 고민과 걱정이 없는 상태'이며, '편안하고 여유로움'이 넘치는 때는 별로 없습니다. 

행복에 대한 일반적인 수준의 심리학적 정의는 '자신이 원하고 목표하던 바를 이루거나 획득했을 때 느끼는 감정' 정도입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앞서 말했던 정의는 일상적인 '행복한 상태'가 아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 항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좋은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경험'하는 "특이하고 드문 수준의 비현실적일 정도로 드문 행복한 상태"일 것입니다. 


만약 '행복'에 대하여 이와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실제로 행복감을 경험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즉, 행복에 대한 정의가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인관계나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됩니다. 

각양각색의 성격과 다른 내적 요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 세상인데, 그 안에서 갈등이나 불일치가 없이 모두가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을 가지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달성 불가능한 기대일 뿐입니다. 



2. 대인관계의 명과 암


어떤 활동을 해야 좀 즐겁고 기분이 회복되실까요?

여행을 가면 좋을 것 같네요. 

여행이요? 좋죠! 같이 갈 사람은 있으세요?

같이 갈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닌데.. 같이 가자니 좀 불편하고 거슬릴 것 같고.. 혼자 가자니 외롭고 심심할 것 같고.. 고민이네요..

- 한 내담자 분과의 상담 내용 중 -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것은 본능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함께 할 누군가를 원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서로의 요구나 성향이 안 맞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나 불편함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마음의 힘듦을 겪기도 합니다. 


즉, 대인관계에서의 의존 및 관계와 교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만족과 즐거움은 상호 간 생각이나 요구가 불일치하는데 따른 갈등이나 대립과 공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밥을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서, 자신이 원하는 속도에 따라 식사를 해도 됩니다. 다만 어떤 때에는 혼밥이 쓸쓸하게 느껴지고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면 본인이 원하는 메뉴만 먹을 수는 없으며, 원하는 음식이나 식당의 종류에서도 타협이 필요하며, 식사 속도도 대충은 맞추어 가야 눈칫밥을 덜 먹게 됩니다. 다만 식사라는 것이 단순히 밥을 먹는 과정이 아니라 사교와 정분을 나누는 장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 간의 다름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어쩔 수 없는 불일치가 발생하며, 이로 인한 갈등이나 대립 또한 필수적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충족하겠다고 한다면 따돌림과 소외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과 불일치가 없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관계란 없습니다. 

있다고 하면 그것은 본인 중심의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관계일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타인들의 요구나 바라는 바를 절대적으로 희생해야만 가능한 관계입니다. 



3. 같은 유형끼리 일하는 것이 좋을까요?


심리 전문가, 특히 성격 전문가로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같은 혹은 비슷한 성격끼리 결혼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다른 성격끼리 결혼하는 것이 좋을까요?' 혹은

'같은 혹은 비슷한 성격끼리 일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다른 성격끼리 일하는 것이 좋을까요?'라는 질문입니다. 

그나마 결혼의 경우에는 '같은 유형끼리 결혼하면 서로의 생활방식이 익숙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좋고, 다른 유형끼리 결혼하면 서로 간에 차이가 매력으로 끌리기 때문에 설렘이 많습니다!'라고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대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업무적 차원에서는 '반드시 다른 유형과 함께 일해서 자신에게 부족한 측면을 보완할 수 있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집니다!'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서로 간의 장단점이 있으며 이를 통해서 서로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성장하는 조직의 조건 중 하나가 '다양성'이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점을 수용해야 하며, 과정에서는 불일치와 갈등이나 대립이 필수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덜 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성에 기반한 시너지와 상호 간의 보완'이라는 지향점 이면에는 '서로 간의 불일치와 갈등'이라는 그림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틀림'으로 '비난'하지 말고, '다름'으로 '조화'하기


우리의 외모가 서로 다르고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가까운 가족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격이나 내적 요구도 서로 다르며 똑같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깊이 들어가면 다 다른 요구와 성향을 보입니다. 

이와 같은 차이와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다름'으로 보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의 차이를 '틀림'으로 보면 서로 '비난'하며 헐뜯게 됩니다. 

서로 자기주장과 독선에 빠지고 서로를 공격하며 둘 다 손상되고 다치게 됩니다. 

갈등이나 싸움이 되어 서로를 망가뜨리는 독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차이를 '다름'으로 보면 그 차이는 조절과 타협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며 협의와 조율을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됩니다. 

그 과정은 비난 비난과 공격이 아닌 '경청'과 '수용', 그리고 '타협'과 '조율'이 일어나게 됩니다. 


필연적인 '불일치'를 '틀림'으로 보고 서로 '비난'하고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불일치'를 '다름'으로 보고 서로 '타협'하고 '조율'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일 뿐입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에 따라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좋은 발전을 이루는 기회가 될 갈등관리와 해결'이 될 것인지, 아니면 '내부의 싸움이 커져서 결국 갈라서고 대립하는 원인이 되는 갈등'이 될지가 결정됩니다. 



5. 정치에도 리더십(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오늘의 주제인 '불일치와 갈등'이라는 주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최근 선거를 앞두고 온 국민의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정치 행동들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소한 차이라도 갈등과 대립의 주제로 삼아 상대방의 장점은 무시하고 공격과 비난의 주제로 삼는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정치입니다. 

내로남불과 아전인수가 가장 판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진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리더의 육성과 개발을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일 기울입니다. 

이를 통해서 더욱더 큰 발전과 성장을 만들어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만약 충분한 리더십 교육이 없다면 각 개인의 개인기에 의존한 비체계적이고 시스템적 발전이 없는 불확실한 미래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정치인들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정치 리더들이 진지한 자기반성과 내성에 근거한 성장과 발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수행하고 있습니까?

아이들에게 국회 청문회 동영상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토론과 회의 방식입니다!'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회토론과 회의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을 왜 그들만 모르고 있을까요?

정치하시는 분들일수록 다양성에 대한 이해 및 차이를 '틀림'으로 보아 '공격'과 '비난'을 하지 말고, '다름'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여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교육이 제일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일치'와 '갈등'을 '다양성에 기반한 건강한 발전과 성장의 동력'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공격'과 '비난'의 소재로 쓰시면서 온 국민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정치인 분들을 보면서 갑갑한 마음에 (평상시의 저 답지 않게?!^^) 감정 섞인 글을 좀 쓴 것 같네요.. ㅠㅠ ^^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미성숙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보다 성숙한 발전과 성장을 고민하는 계기로라도 삼아야 할 것 같아서 몇 자 적었습니다. 

글을 마쳤으니.. 저부터 반성 모드 시작하겠습니다~ ㅠㅠ ^^  

 



https://brunch.co.kr/@mindclinic/160


https://brunch.co.kr/@mindclinic/121


https://brunch.co.kr/@mindclinic/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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