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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을 시작한다.

시간은 약이 아니라, 나에게 고행이었다.

섬유근육통은 만성적으로 전신의 근골격계 통증 및 뻣뻣함, 감각이상, 피로감을 일으키고 신체 곳곳에 압통점이 나타나는 통증 증후군이다.


발병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유전적 소인이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생이 된다.


즉, 후천적 요인으로 외상이나 바이러스 감염, 호르몬 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이다. 원인도 특정되기 어렵지만 치료는 더욱이 어렵다. 신체에 국한되지 않고, 정신과의 경계에 있기 때문에 마음에 대한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또 그렇다고 꼭 낫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난치병이라 한다. '

난해한 병때문에 '섬유근육통’ 네이버 카페에는 유사한 증상이 있지만 진단을 받지 못해서 진단이 가능한 교수님을 수소문하거나 무속을 찾는 이들도 많다.


나는 섬유근육통 진단을 코로나 백신 접종 이후 3년 만에 받을 수 있었다.


그전엔 50여 군데 병원을 가도 병명이 나오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명한 병원을 찾아가도 역시나 같은 반응이고,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가서 처치만 하고 다시 돌아오는 일상도 언제부터 인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몸 전체 피부가 피와 진물로 점점 괴사 되는 듯 검게 변하고 있어서 옷을 입고 벗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약을 먹으면 설명서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부작용을 그대로 경험하기 때문에 어떤 약도 먹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겐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시간이 고행이었다.


그저 버티고 견디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희망이 사라지니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다시 예전처럼 걷고, 정상적으로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점차 확신이 되면서 점점 공포가 되었다.


공포가 극한으로 가니, 이기적인 나 자신이 된다.

마지막이라도 고통 없이, 편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매일 사랑한다는 아이의 말도 더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몰래 흘리는 남편의 눈물도 내게는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언제부턴가 조금씩 삶의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살려 놓았으니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의지가 생긴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다.


이유 없이 계속 흐르는 눈물과 그런 눈물을 닦으면서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해?’하는 질문은 무엇인가를 원망하게 되고, 원망의 끝은 화의 씨가 되어 분노가 폭발하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면 마치 유체가 이탈된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데 자기 객관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쓰럽고 불쌍한 생각에 감정만 더 자극되었다. 그리고 감정이 몰입이 되면서 나의 인격은 바뀌기 시작했다.


폭군이 된 것이다.

작은 일에도 감정을 주체하기가 어려웠고, 인내의 한계선을 넘다 보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그래서 세상이 낳은 가장 큰 피해자가 되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고, 상상이 아닌 망상을 이어갔다.



특히 이때는 세상의 그 어떤 자극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침에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청국장 냄새나 커튼 사이로 동이 트는 햇빛도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더운 날에도 문을 꽁꽁 닫고, 암막 커튼으로 바깥세상을 단절한 채 최소한의 범위만 허락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어떤 날은 내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에 또 자책을 한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이런 내가 아닌데, 왜 이렇게 변한 걸까?'


왔다 갔다 하는 생각 때문에

정말 정신 이상이 올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나만 나를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울화 같은 감정이 넘치는데

내가 억지로 꾹꾹 담아 두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컴퓨터를 켰다. 나쁜 일이든 나쁜 감정이든 뭐가 되었든 다 적어 보기로 했다.


도대체 뭐가 그리도 힘들게 하는 건지 뒤엉켜 있는 머릿속 생각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화풀이가 필요하면 화풀이를 해야 하겠다.’하고 생각을 한 것이다.


눈물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강제로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그때를 마주했다.


몸에는 경련도 일어나고, 감정이 움직이는 만큼 체온도 같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써내려 갔다.


그러다 쓴 글을 다시 보면서 문득 ‘정말 이 기억이 맞는 걸까?’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생각을 추적하다 부정적인 몇 가지의 기억이 긍정적인 기억들마저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몇 개의 좋은 경험을 찾았을 뿐인데 오류로 인식되었던 사건들이 바로 잡히고, 그동안 잘못 바라보았던 내 안에 부끄러움이 생겼다.


내 잘못을 인정하면서 나처럼 다른 사람도 잘못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행동에 꼭 나쁜 의도가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렇게 수용이 되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마치 불나방 같다.

죽을지도 모르면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말이다. 그런데 죽어도 불속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우리가 지금 지구별 체험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래서 지금 우리의 인생을 미리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해보자.


나는 아마 지금의 삶을 선택했음이 확실하다.

힘들고, 거칠고, 빡쎈 인생이지만 분명 극복할 수 있노라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불나방처럼 몸을 던져 힘든 순간 모두를 체험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용기를 지녔다 생각하니 지금의 내 삶에 있어 나는 더없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조차도 또 다른 망상이겠지만, 지금의 좌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긍정을 실현하는 좋은 상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신비로운 말처럼 말이다.


지금껏 내가 읽은 수많은 책의 교훈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사유리님의 말처럼

'사람이라는 책은 아무리 표지가 좋아도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을 때까지는 알 수 없는 인생이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극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내 인생은 이제 다른 엔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답을 정해 놓은 엔딩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순간을 소중히 만들어 가는 삶의 목적에 보다 집중한다.


그래야 내 영혼의 속도가 현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의 명대사

'순간을 소중히'는 그렇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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