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소윤강사 Sep 14. 2024

자기 판단을 내려놓다.

가장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다.


미국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존 사노 John Sarno교수는 여러 환자들을 대면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만성 증상을 앓고 있는 환자들 대부분이 매우 양심적이고, 타인을 기쁘게 해 주는 일에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매우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품위를 잃는 것에도 불쾌해 한다. 그에 반해 걱정이 많은 특징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는 가혹한 반면, 가족과 주의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보다 많은 책임을 짊어지려 한다.


그들의 이런 성격은 스스로에게 많은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고, 이러한 압박은 완벽주의 형태로 내면의 심리적 긴장을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신체의 구조는 정상이지만, 마음 곧 무의식 속에서 매우 많은 양의 분노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신체의 통증을 필요로 한다.



정신분석 이론의 창시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또한 사람들은 무의식적 억압이나 의식적 억제를 통해 심리적 갈등을 해결 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억압에 의해 차단된 부정 정서의 경험은 신체적 증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와 현실에서의 무의식적인 다양한 문제들은 불안, 분노, 화, 혼란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좋은 사람이 되고자 자신을 가혹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잃은 채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행동은 자기가 만든 틀 안에 스스로 구속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


나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부정적이거나 불편한 감정의 상태가 아님에도 비 오듯 땀이 흐르고, 온몸이 아픈 신체화 증상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감정에 대해 바라보는 나의 태도이다.


김형태님의 저서 <TMS통증의 진실>에는 나와 같은 환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것 중 하나가 ‘나는 어떠한 감정도 불쾌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는 말이라고 했다.


또한 과거의 특정한 트라우마 역시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본인 스스로의 대답보다 '현재 겪고 있는 신체 통증'이 감정적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분명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많은 환자들의 경우 오랫동안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오다 순식간에 증상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될 때 자신의 감정 문제를 인식한다는 중요한 말도 덧붙였다.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억압을 하면, 의식적으로는 감정에 무딘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태에 익숙해지게 되면, 화가 나거나 기쁘거나 슬픈 일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적절한 말로 감정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감정표현불능증 alexithymia은 정서를 언어화하지 못한다no words for feelings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즉 감정표현불능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정서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식별하는 능력이나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에 결함이 있어 감정을 느낄 수는 있으나 그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언어로 설명하는 정서의 식별이나 표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치료 교육의 일인자 버지니아 사티어 Virginia Satir는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가족, 친척, 학교 선생님, 친구, 이웃, 애완동물, 책, 영화나 소설, 장소, 특별히 좋아하던 장난감을 다루기 위해서 ‘영향력의 수레바퀴’ 기법을 제시하였다.


이 기법은 심리 상담을 할 때 내면에 고착된 억압의 방어기제를 푸는 작업으로 많이 활용된다. 나는 이를 활용하며 어린 시절 나에게 친구처럼 말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많이 아팠구나. 사람들은 어린 너에게 얼마큼 상처를 받았었는지 마음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이 그저 보이는 상황만으로 이야기를 해서 더 속상했을 것 같아.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그런 의도를 가졌기 보다는 처음 겪는 상황에서 많이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던 것은 아닐까? 정말 단 한 순간도 좋았던 순간은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때는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기억한 거고, 기억의 오류나 혹은 마음이 오류를 일으켰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나는 불현듯 사진첩을 열었다.

기억을 하지 못한 6살의 생일, 아들 둘을 키우고 있던 큰 엄마는 난생 처음 내 머리를 땋아 주셨는데 어디서 배워 온 솜씨였다.


세로로 머리를 땋는 것이 아니라 가로로 머리를 땋아서 마치 머리띠를 한 모양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장의 사진에 계속 찍힌 걸 보면 시간도 꽤 걸렸던 듯하다.


그리고 나는 사진 속에서 너무 행복해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랬다.

평소 나는, 내가 느끼는 강력한 일들만 반추하다 보니 내가 좋았던 그리고 행복 했던 순간을 모두 과거로 흘러 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빠듯한 형편에서도 예쁘게 키워주기 위해 노력한 큰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나의 타임머신은 끝이 났다.


나는 그동안 상처받았다는 생각에 나를 가두었다.

그 생각은 어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봉인된 문을 여는 것이 스스로 감당이 되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래서 그 생각이 맞는지 혹은 아닌지조차 확인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용기를 지닌다면 상처는 단지 아픔의 표시에 불과할 뿐, 나는 그 상처를 통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상처의 깊이를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가장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상처의 깊이만큼 사랑했고

앞으로 또 사랑의 깊이만큼 다시 상처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을 피한다고 해서 상처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저 사랑하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