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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다 지나간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부여한 의미를 통해서 현실을 경험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부여한 의미를 통해서 현실을 경험한다.


객관적인 현실 자체가 아닌 마음의 해석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순탄한 길을 걸을 때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해석의 틀을 변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도구가 된다.


특히 좌절을 경험하고 있을 때는 원망에서 비롯된 물음이 또 물음을 낳기도 한다.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다운증후군인 쌍둥이 언니 영희와 힘겹게 살아온 영옥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힘겨운 영옥의 아픔과 부담감은 어느덧 절정이 되면서 울부짖는 장면이다.


“영희도 다 알아. 개도 고양이도 감정이 있는데, 영희도 사람들이 자기를 이상하게 보는 걸 다 안다고. 내가 20년도 훨씬 전에 자길 지하철에 버리려고 했던 것도 다 알아. 다 기억한다고.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영희는 다 알아. 내가 자길 얼마나 버거워하는지 자긴 다 안다고. 억울해. 왜 우리 부모님은 착하지도 않은 나한테 저런 앨 버려두고 가셨는지. 억울해. 왜 나한테 저런 언니가 있는지. 억울해.”


강한 개는 약한 개를 보고 절대 짖지 않는다.

작고 약한 개가 크고 강한 개를 보고 짖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를 보고 짖는 이유는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는 개도 사람도 짖지 않는다.


상대가 강하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하늘도 마찬가지이다.


강한 사람에게 더 큰 힘을 지게 하고, 세상의 변화에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힘든 일이 많이 주어지는 것은 그만큼 감당해 낼 수 있는 큰 사람이라는 뜻이다.


<맹자>는

"하늘이 장차 큰 소임을 그 사람에게 맡기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의 근골을 고달프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고, 피곤하게 하고, 행동을 가로막아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흐트러 뜨린다. 이처럼 심성을 움직여서 참게 하는 것은 그가 능히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늘의 큰 뜻을 이해하고 나면, 지금 내 마음이 느끼는 좌절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가 되면, 그 감정도 조금씩 사라진다. 원래 감정은 계절처럼 또 바람처럼 잠시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를 한다.


무형은 형태를 취하고, 형태를 취한 것은 다시 무형의 것으로 돌아간다.


여름이 되면 날씨가 '너무 덥다’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 기온은 반드시 내려가기 마련이다. 가을이 오기 때문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그 반대 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우주의 법칙이다.


결국,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이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지금껏 살면서 실패를 많이 했다면 그건 그만큼 포기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만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전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의미이고, 도전이 반복된다면 머지않아 도전의 결과도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발견들은 좌절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그리고 인생의 ‘좌절감’이란 열차역에서 그 또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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