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지만 자극은 필요하니까, 틴더

코로나를 건너 달리는 여성의 구애의 춤

by 김바리

구글은 참 친절하다. '카톡 차단 확인 방법'이라는 키워드만 치면 상대가 나를 차단 했는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 주르륵 뜬다.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다 그 남자 덕분이다. 그와의 마지막 대화는 '굿모닝!'이라는 내 독백이었다. 대화창 속 사라지지 않는 ‘1’이 너무 답답해서 검색해보니 그가 나를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처음에는 분노에 치를 떨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찌 됐든 ‘다음엔 나 같은 사람은 믿고 걸러줘’라는 교훈은 남기고 간 거 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그와의 역사는 20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나의 연애사를 살짝 훑어보자면 가짓수에 비해 이렇다 할 영양이 없는, 마치 이력서에 쓸데없는 경력만 있어서 ‘이거 했다’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의 것이었다. 하나는 바람을, 하나는 도박을, 하나는 극우 커뮤니티를,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남자가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것들’을 빠짐없이 하나씩 가지고 있던 남자들. 내가 흔히 말하는 '얼빠(얼굴에만 집착하는 사람)'여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호구'여서였을까? 왜 나는 이런 남자만 꼬이는 걸까? 여러 번 자문해봤지만 도통 답이 나오질 않아 사주팔자, 별자리 점, MBTI 테스트에 의존하며 모든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운명의 탓으로 여기려 했다.


직관과 감을 믿고 싶었지만 이렇게 타자에 의해 경험주의자가 되어버린 나의 연애 역사는 별안간 획기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틴더(Tinder)!'. 틴더로 말할 것 같으면 미국에서 개발한 대표적인 데이팅 앱이다. 현지에서는 즉석 만남을 목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바깥 활동의 제약이 많아지면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성과 만남을 기대하며 틴더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한 유튜버가 고정 패널인 여자 게스트와 틴더에서 만나 절친이 되었다고 고백한 것을 보고 바로 틴더를 깔았다. 우선은 외로워서, 심심해서 동네 친구가 필요했고, 외모만 보는, '외모 팬 얼빠'인 나에게 아주 좋은 매운맛 연애 교육의 현장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눈도 못 마주치는 1호와 투머치토커 2호를 거쳐, 3호를 만났다. 그와 처음 연락을 시작한 것은 틴더를 깐 지 삼 일째 되던 날 새벽 두 시경. 나쁜 기억력은 이렇게 상처받은 영역에서만 굉장히 잘 발휘되기 마련이다. 대화를 나눈 사람 중 외모가 가장 내 스타일이었다. 그의 프로필은 뒷모습의 토르소만 담긴 채 비스듬히 사선을 내려다보는 시선의 사진 한 장이었다. 틴더를 좀 해보니 프로필 사진들, 그리고 소개 글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성향,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온다. 그런데 그 사진 한 장의 몹쓸 분위기, 그리고 프로필에 적힌 '정상인이라면 안 믿겠죠~?' 라는 글귀가 묘하게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틴더엔 정상인은 없다. 애초에 정상인의 기준이 뭘까? 틴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상인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저도 이 ‘정상인 아님’에 해당합니다만).


나는 외모만 보고 상대방과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도 않은 채로 그 사람을 이상화하고서 금세 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앓는, 소위 말하는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금사빠’인 나의 단점은 이 열정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상대에게서 일련의 흠을 발견하는 순간, 또 그 흠이 내가 정한 기준을 벗어난 것이라면 더 매몰차게 상대를 깎아내리는 몹시 나쁜 버릇이 있다. 틴더를 통해 외모가 번지르르한 남자를 만나서 호되게 당해보면(?) 어쩌면 나도 정신을 차리고 현실에 타협하며 살지도 모르겠다는, 이상한 사고회로가 작동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예감은 어느 정도 맞았다.


열 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런데 계획했던 10명을 채우지도 못하고 3호에서 고꾸라졌다. 말 그대로 You Lose! 그와는 차단당하기 전까지 20일 동안 연락했고 총 두 번을 만났다. 이상한 건, 그는 꼭 낮이 아니라 저녁에 내가 사는 동네에 차를 끌고 와서 한두 시간 이야기하고 귀가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아 바쁜 사람이니까, 잠깐이라도 얼굴 보러 오나 보다.’라고 정신승리를 했다. 그런데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상대 여성이 궁금하거나 호감이 있으면 데이트를 하지 않을까? 대뜸 ‘나 오늘 너희 동네 갈거야!’ 라며 맥락에 맞지 않은 카톡을 던진다든지, 중간중간 이상한, 19금은 아닌데 그렇다고 15세도 아닌 오묘한 성적 신호를 보내는 그의 메시지에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좀체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런데 그 ‘사건’의 날, 아침 인사를 하고 한 시간 정도 후에 카카오톡 차단을 당했다. 두 번 만나고 이틀 정도 연락을 이어오던 때였다.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내 기분은 '설마'라는 의심에서 '진짜?'라는 믿을 수 없음과 '왜?'라는 질문과 '당신이 뭔데 나를?'이라는 분노와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는 자책과 '진작 말을 하지'라는 아쉬움, '미안하다'라는 떫은 사과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로 휘몰아치는 것과 같았다. 도저히 혼자서는 이 감정을 견딜 수가 없어 가까운 친구, 가족, 남자 사람 친구까지 세 사람을 불러내 조언을 구했다. 왜냐하면, 다음에는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여기서도 나의 자기계발충적 면모가 드러난다). 어느 정도 냉정한, 간혹 이른바 '뼈 때리는' 감정 평가를 받은 뒤 나는 이틀 만에 정신을 차렸고, 느낀 것들을 타이핑해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틴더 분투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호로 인해 다소 프로젝트가 연기되었지만, 어쨌든 나는 틴더 10호까지 만날 계획이다. 망상 전문가로서 ‘도중에 남자친구가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망상도 해보았지만, 글쎄. 이제 나는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 ‘예전’이란 불과 한 달 전의 나. 어쩌면 내 예상보다 더 빨리 틴더가 나에게 이성을 보는 눈을 길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성을 보는 눈이란, 망막에 빛이 맺히기 위해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스펙트럼을 담는 눈이다. 그런 의미에서 3호는 나쁜 전자기파다. 인간의 몸에는 나쁘지만, 인류 문명에서는 정보를 전달하는 무선 통신의 핵심 기술이다. 무슨 소리 하고 있니? 라고 물으신다면, 세상에 나쁜 빛은 없다는 뜻이다. 다만, 내 몸에 직접적으로 쏘였으니 나쁠 뿐.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별 인사를 하며 글을 맺고 싶다.



To. 3호에

어딘가, 누군가에겐 좋은 전자기파가 되시길, 3호여.

나도 내 몸에 좋은 빛을 찾아 오늘도 떠납니다.


빛을 좋아하는 서대문구 오징어로부터

keyword
김바리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팔로워 129
이전 05화예민하지만 자극은 필요하니까, 편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