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선생님 혹시 '이시이 유카리'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플 '점신'을 다운로드하여봤을 가능성이 높고, 타로 마스터 정회도의 유튜브 영상을 최소 하나는 본 적이 있을 수도 있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방의 MBTI는 무엇인지 물어봤을 확률이 80프로 이상이라는 것에 제가 마시고 있는 야채주스를 걸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방금 저는 자기소개를 마친 셈인데요. 역사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온 것처럼 언제인지 정확히 시기를 유추할 수 없는 신화와도 같은 머나먼 옛이야기입니다만, 어쨌든 대충 학창 시절 잡지 가장 뒷면에 실린 별자리 운세를 유심히 볼 시기부터 사주팔자 별자리 타로 심리테스트, 이런 종류의 다양한 것들을 보고 과하게 '이건 내 이야기야!'라며 금세 몰입했던 편입니다.
작년과 올해 MBTI가 온라인 상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유사 언론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짐에 따라 이를 대체할 만한 수단으로 MBTI, 애니어그램, BIG5 등 빠르게 본인과 다른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성격 테스트에 열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요. 저도 이 부분에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특히나 저는 MBTI에 어느 정도 은혜를 입은 입장이라고나 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모난 데다가 고민하는 깊이가 주변인들보다 한 단계 더 깊고 또 오래가는 성향이었어서 스스로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INFJ'라는 하나의 타이틀을 얻고 난 후에는 '아, 내가 이래서 그랬구나.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라고 깨달았고 이 발견이 일상을 살아내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흔히 말하는 'MBTI과몰입'이 낳은 부작용인데요. 이렇게 어느 프레임 안에 저를 넣어두고 해석하기 좋은 것만 흡수해 버리는 증세가 계속되다 보니 새로 나온 성격 유형 테스트는 반드시 해보아야 직성이 풀리고 또 그 결과를 비판 없이 흡수해버리는 그런 부작용이 생기지 말입니다.
사례 중 하나로, 안 그래도 금사빠인 저는 새로운 이성을 만났을 때 그를 더 오래 알기 전에 그의 MBTI가 'INFP'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와 궁합이 굉장히 잘 맞을 거라고 확신하며 찰떡궁합인 관계로 착각하다 눈치 없이 갑자기 관계를 끝냄 당하는, 그런 어이없는 일도 겪었었죠. 뭐, 이 경험을 통해 어쩌면 각성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격 유형 이론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런 의미에선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까요.
아차차, 제가 <예민하지만 자극은 필요해> 시리즈에 심리테스트 주제를 꺼낸 이유는 비단 갑작스럽게 당한 이별의 씁쓸함을 논하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프로필에도 그랬고 시리즈명에도 넌지시 내비추었지만 저는 예민하지만 자극은 필요한, 참으로 모순적인 성향의 여성입니다. 이것은 또 MBTI의 범주 안에서는 해석할 수 없는 것이었어서 이것저것 새로운 심리 테스트, 성격 테스트가 나올 때마다 검사를 해봐도 저의 성향을 어떤 그릇에 담아야 할지 모르는, 약간 난감한 부분이 있었어요.
어쩔 때 보면 굉장히 내향적이고 소극적이고 조용한 듯하다가도 갑자기 충동적으로 일련의 일탈을 한다든지 굉장히 활동적이다가도 또 금세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야 하는, 저도 저를 잘 모르겠는 순간들이 자주 있었거든요. INFJ 성향 중에 '가면을 잘 쓴다'는 부분에 어느 정도 부합하긴 하지만 무언가 완벽하게 제 성격을 설명해주진 않는 것 같은 그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를 설명해주는 용어를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에서 일레인 아론 박사가 풀어냈지 뭡니까. 이름하야 HSS형 HSP!
조금 낯설 수 있는 용어입니다만 풀어쓰자면, High Sensation Seeking & Highiy Sensitive Person, 즉 '자극 추구형인 데다가 지극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구성원 중 15~20%가 HSP이고, 또 그중 30% 정도가 HSS라고 하는데요 (나머지 70%는 내향형). 확률에서도 배우듯 A이고 B이다는 곱하기로 계산해야 하는데, 전체 인구 중에 0.2 * 0.3 = 0.06% 인 사람만큼 HSS형 HSP 인간이 있다면, 아주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한민구 인구 5100만 중 300만 명 정도는 저와 같은 성향을 가진 겁니다. 적지 않은 인구라고 위로해야 할까요?
아무튼 이런 이유로 저는 예민하지만 자극은 필요한 사람인 듯합니다. 혹시 본인도 그런 사람은 아닌가, 최소한 MBTI에 'I'와 'J'를 함께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아래 테스트를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미묘한 변화를 금방 알아차리는 편이다
[ ] 타인의 기분에 좌우된다
[ ] 통증에 아주 민감하다
[ ] 바쁜 날이 이어지면 자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침대나 어두운 방에 틀어박히고 싶다
[ ] 카페인에 민감하다
[ ] 밝은 빛이나 강한 냄새, 까끌까끌한 천, 사이렌 소리 등에 압도된다
[ ] 상상력이 풍부해 자주 공상에 빠진다
[ ] 소음 때문에 고민한다
[ ] 그림이나 음악에 깊이 감동한다
[ ] 매우 양심적이다
[ ] 툭하면 깜짝 놀란다
[ ] 단기간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 정신을 못 차린다.
[ ] 남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거나 불쾌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기분이 풀릴지 바로 안다
[ ]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부탁받는 게 싫다
[ ] 실수를 하거나 뭔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신경 쓴다
[ ] 폭력적인 영화나 티브이 프로그램은 가급적 보지 않는다
[ ] 배고프면 집중이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해지는 등 신체 반응이 뚜렷하다
[ ] 생활에 변화가 생기면 혼란스럽다
[ ] 섬세한 향기나 맛, 소리, 음악 등을 선호한다
[ ] '혼란 상황은 피하기'를 늘 최우선으로 한다
[ ] 경쟁하거나 누가 나를 관찰하면 긴장해서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 ] 어린 시절, 부모 또는 교사에게 예민하다거나 내성적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The Highly Sensitive Person>을 바탕으로 작성을 바탕으로 작성
12개 이상에 '네'라고 대답했다면 매우 민감한 기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나가누마 무츠오의 <그래요, 나 민감해요>에 따르면 여기에 HSS 성향이 더해진 사람들은 대외적으로는 굉장히 쾌활하고 활기 넘치며 모험을 즐기는 듯 보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본래의 HSP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이런 사람들은 순수한 HSS는 아니기에 과감한 모험은 즐기지 않고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걷기만 해도 왕성한 호기심을 충족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평균 이상으로 민감하기에 지나친 자극을 받으면 컨디션이 나빠지거나 자율 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등 다양한 과민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해요 (누가 민간인 사찰했나요).
이런 이유로 조금 피곤한 나입니다만, 가끔 또 우울해지거나 관계나 일에 있어서 일상을 버티기 힘들어질 때면, '아, 맞아. 나는 이렇고 이런 사람이지.' 라며 조금 빨리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데서 저에겐 꽤나 도움이 되는 발견이지 말입니다.
MBTI에 대한 열기도 이제는 전보다 조금 시들해지긴 했습니다만, 또 어디선가 '이거 내 얘기 아니야?' 하는 새로운 심리테스트가 나타난다면 못 믿는 척하며 이것저것 체크리스트를 눌러대겠지요. 아직도 나는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저에 대한 확신이 설 때까지 심지어 할머니가 되어도 새로 나온 '세타 세대 사이에서 요즘 핫하다는 심리테스트' 같은 것에 혹해서 클릭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P.S. 저 같은 사람에게 감성 마케팅을 하면 120프로 먹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케터님들.
HSS형 HSP인 저를 공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