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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Feb 03. 2024

발, 발, 무슨 발.

좋은 구두를 신으면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한다.

신발을 선물하면 연인과 헤어진다고 표현한다.

운동화의 풀린 끈을 묶어주는 사람에게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하이힐을 신고 위로 상승하면 느껴지는 윗공기 스멜.

자신감이 차오르는 느낌.






9센티미터 이상 하이힐을 신진 못했고, 5센티미터 정도의 구두를 신었다.

검은 둥근 코의 신발, 여름엔 앞이 트인 샌들, 이에 걸맞은 페디큐어는 필수.

아이를 낳고서는 높은 굽의 신발은 신어본적이 없다.

어쩌면 발을 길들여 5센티미터 정도는 계속 신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 선택한 신발은 편안한 단화나 옥스포드화였다.

직장 생활과 육아의 양다리에서 피로감은 쌓여갔고 그 반증으로 신체는 참 성실하게도 반응했다.

왼쪽 발바닥에 생긴 티눈.

딱딱한 그 아이는 벌써 십 년째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티눈이 난 자리는 신체 중 폐를 의미한다고 한다.

잦은 기침을 달고 살았던지라 늘 폐는 다소 약한 부분이었다.

친정 엄마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발엔 인체의 모든 기관과 장기가 들어있는데, 네 티눈을 보니 폐가 안 좋으니 생긴 것 같다."


더덕가루를 먹고, 은행을 구워삶아 먹어본다.

기관지에 좋다는 건 잊어먹지만 않으면 일단 먹는다.

산후조리 때도 문어삶은 물이며 가물치즙까지 몸에 좋다면 마다하지 않고 넙죽넙죽 다 받아먹은 이력이 있는지라

일단은 먹고 본다. 

발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티눈이 난 자리는 그대로이다.

딱지가 생겨 자르고 또 자르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끈덕지게 붙어있다.

덕분에 신발은 늘 푹신하고 편한 것만 신는다.

발도 시리고 티눈도 있어서 딱딱한 건 질색이다.

집에서도 덧신이나 폭삭한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누군가의 발을 보는 기회란 사실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의 발을 보면 참 예쁘고 깨끗하구나, 지금 화면처럼. 이런 생각이 든다.

발을 보면 왠지 그 사람의 인생이 녹아져 있는 것 같다. 

발레리나 강수진 님이 발을 보며 참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무대 말고, 그 시간을 위해 무수히 준비했을 연습 시간. 

그녀의 발은 그 꾸준한 시간을 명확히도 드러내고 있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늘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던 나는 물이나 도라지 가루를 입에 달고 살았고, 아이들이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시절엔 행복하면서도 피곤하고 고단했었다.

그 피로가 쌓여 나에게 티눈을 남겼다. 

이번주는 뭔가 모르게 쉴 틈 없이 바쁘고, 마음으로 신경을 많이 썼는데 발바닥을 보니 그새 딱딱해져 있었다.

좀 더 쉬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누가 보면 엄청 바쁜 사업가인줄 하는 생각이 들어 참 우스웠다. 

그동안 피곤하기만 했던 걸까. 내 발은.

아니면 불나게 열나게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일까.






감추고만 싶었던 발을 가만가만 주물러보았다.

크림도 듬뿍 바르고 보드라운 수면 양말을 신었다.

건마사지기로 발바닥을 안마해줬다.

열심히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발에게 좀 마음 한편을 내주는 밤이었다.

내일도 잊지 않고 수고한 발에게 작은 쉼을 선물해야겠다.

허리를 좀 더 펴고 걸어서 발에게 주는 부담도 줄여야겠다.

새 양말을 꺼내어 신겨주고 하루를 출발하면, 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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