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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좀 쉬러 갑니다.

나만의 힐링 장소

by 마음돌봄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톨스토의 책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면 또 한 번 알 수 있다.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소위 말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경우인 것이 바로 이 질문이다.

나이, 상황, 국가, 혹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희망으로 산다. 어느 유명 가수는 말했다. 사람이 한 가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아홉 가지 싫은 일을 해야 한다고. 돈과 명예가 있는 게다가 똑똑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도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깊은 동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저이도 인간이 맞는구나. 나처럼 아침에 유산균을 들이붓고 똥이슈가 잘 해결되길 바라며 맛있는 음식을 이쁘게 좋은 사람들과 먹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 나이가 들면 처지는 턱살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들쳐보려는 그런 평범한 사람. 그의 직업이나 여건이 눈에 띄고 돋보이는 일이나 결국 육신과 정신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는 것은 자명한 것. 나 또한 그 좋아하는 한 가지를 위해 아홉 가지의 일을 하는 것이다.








지옥도 천국도 내 마음에 있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즐겁게 하는 것도 내 몫, 불평하는 것도 내 몫이다.

가끔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그래, 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냐. 가족들을 위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빼어난 솜씨가 아니어도 나로 인해 깨끗해지는 공간을 보며, 머릿속에서 비록 주부로서의 역할에 관한 시간당 페이는 어찌 계산되어야 할 것인가, 가사 노동의 가치는 어떤 기준으로 책정할 것이며 노동법에 과연 명시가 될 날은 언제인가를 생각할지라도 현재 주어진 일이라면 묵묵히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생각하며 먼지와의 한판승을 치러본다.


할 일이 많은 것과 비례하여 행동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참 여상한 일이다.

나이 탓을 하기엔 아직 젊고, 마냥 그렇지 않기엔 체력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은 사실.

스쾃을 하고 요가를 해야 평생 글을 쓸 수 있다는 인기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직도 머릿속에서 열심히 달리는 나의 몸뚱이는 현실에선 오히려 지쳐 있는 것이다.








노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어진 일을 하다가도 늘 가고 싶은 곳은 정해져 있다.

20분 거리 대형 마트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도서관이 보이는데 단 몇 십 분이라도 시간이 있다면 4층 도서관으로 올라가 기꺼이 도서관 의자에 앉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단 30분일지라도 어영부영 흘러갈 수 있는 그 시간을 붙잡아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넣었다는 사실에 꽤나 흡족해하면 앉아있다. 책 냄새를 맡아보면 연한 종이 냄새가 난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 늦깎이 만학도인 할머니와 연신 기침을 해대는 게 미안한지 두리번거리는 중년의 남자, 그리고 늘 친절하고 정확한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 잠시 도서관 중앙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평일 오후 1시 35분, 이 시간에 있는 도서관 이용자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은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고전 문학, 현대 영미 소설, 프랑스 소설, 시집, 자녀 교육서, 자기 계발서, 경제경영서, 철학서적 등 각자 위치에 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지난번 방문했을 때 미처 빌리지 못한 책을 발견해 대출을 고민한다. 마치 어머! 이건 사야 돼.라는 마음으로 어머! 이건 빌려야 해. 를 외치며 책을 대여한다. 딱 한 권만 빌려서 맛있게 읽으리라는 결심이 무색하게 양손에 책을 들고 어깨엔 가방을 메고 유유히 도서관을 빠져나간다.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제목만 주야장천 바라봐도, 몇 페이지 아무 곳이나 들쳐봐도 나는 그 책을 만난 것이다. 다음엔 같은 책을 다른 방식으로 또 만나면 된다. 시끌벅적한 서점도 좋지만 동네 책방이, 호젓하게 혼자 가고 싶을 땐 도서관이 좋다.








아침엔 도서관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날 하루를 바삐 보내는 중간 잠시 숨을 쉴 곳으로 선택해도 좋다.

시간의 허리를 베어 방문한 그곳은 단 30분이라도 나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오후를 살아가는 힘이 된다.

한 손엔 저녁 찬거리를 들고 있을지라도 나머지 손엔 책을 들고 있으면 좋다.

마음과 오장육부를 동시에 채울 수 있기에.

언젠가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 가는 것을 꿈꿔본다.

꿈꾸는 것은 자유고, 꿈을 이루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으로 사는 것이다.


giammarco-boscaro-zeH-ljawHtg-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Giammarco Bosc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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