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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Aug 29. 2023

북(BOOK) 세권에 삽니다.

첫 아파트이자 신혼집은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이 지역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으로 매일 오전 출근을 했었는데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다는 건 아주 편했다. 정류장 옆 육교를 건너면 바로 도심 속 산책로가 이어져서 선선한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산책을 했다. 조금만 걸어가면 먹자골목이 나오는 북적대는 동네였다.

하지만 출산 이후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역세권은 아니어도 나름 편한 곳에 산다고 자부했는데 도서관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혼자 일 때는 고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몇 정거장을 가야 하는 도서관에 다녔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이건 뭐 민족 대이동이다.

기저귀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꾸역꾸역 걸어가거나 이 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택시를 타고 간다.

남편 외벌이 상황에 나의 실업 급여로 꾸리던 살림이라 택시를 타는 것도 별로 편하지가 않다.

지지리 궁상을 떨며 도착한 도서관은 이제 막 어린이 도서관이 신설된지라 깔끔한 실내에

다양한 그림책, 그리고 도서관 문화센터가 생겨서 너무나 편안한 곳이 되었다.

이런 곳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건 당시 어린 엄마로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기어이 거리가 먼 도서관을 다니던 나에겐 도서관 근처의 집이 역세권, 숲세권 집보다 가장 중요했다.

도서관 근처 아파트나 하물며 근처 원룸이라도 보이면 그곳이 무릉도원 같이 느껴졌다.


'저 사람들은 좋겠다. 도서관 근처에 사네. 내 집 드나들 듯 얼마나 자유로울까'


마냥 좋았던 신혼집이 애매한 곳이 되어버렸다. 

아이들 책과 내가 읽을 책으로 집안을 채워도 편하게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바랬었다. 책육아를 했던 나에게 책값은 만만치 않았고 파워블로거가 되어 육아용품이며 책이며 지원받아가며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늘 쪼들리는 엄마였다. 

명품백은 안 사도 명품책을 사서 보여주고 읽으리라 다짐했던 결의에 찬 엄마로서 거리는 멀지만 멀리할 수 없는 도서관 사랑은 계속되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무렵, 비교적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생겼다.

산책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이마저도 버스로 5 정거장을 가고 내려서 걸어야 한다) 푸른길 끝에 도서관이 있다.

다행히 운전을 시작해서 아이들과 더 편하게 다녔다.

맘껏 책을 골라 차 뒷좌석과 앞 좌석에 던져놓고 마음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여전히 '도서관 옆 집'이라는 바람은 있었지만 점점 더 가까워지는 도서관 시스템에 나름 만족하고 살았다.


새로 생긴 신도시로 이사를 왔는데 산책로도 집 앞에 있고 수목원도 있는 숲세권이다.

다니던 도서관이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아파트 도서관이 있어서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고 살았다.

이곳에 자리 잡은 지 7년째, 드디어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걸어서 10분 정도면 가는 거리.

늘 산책로고 걷던 그 길 끝에 도서관이 생겼다.

지난 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간 그곳에는 새 책 냄새가 가득했고, 편안한 소파와 아늑한 조명까지 있는 멋진 곳이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 엄마, 아빠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위 도서관이 집 옆에 생기기를 바라며 시각화를 했다면 혹은 드림 노트에 적고 되뇌었다면 더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결국 도서관이 있는 동네에 살게 되면서 장장 15년 만에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시에서 만들어줬지만 철저하게 나의 꿈이 실현된 것으로 생각하며

새로운 도서관을 많이 사랑해야겠다.


다른 소망이 있는지도 꺼내봐야겠다. 혹시 또 아는가. 이번에 노트에 적고 확언하면 더 빨리 이루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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