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수용을 하던 두 번째 수술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당연히 다르다. 우리는 얼굴도 행동도 환경도 다르기 때문.
나의 취약성 받아들이기를 연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돌이켜보았다.
‘다름’에 대해 다르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있었다. 수치심과 연관되어 있었다.
나만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꽤 억울하기도 했다.
‘왜 나만?’이라는 생각의 덫에 걸려 있었다.
이 틀을 깨게 된 것은 두 번째 수술 때였다.
20살이 되면 귀 수술을 할 거라던 부모님은 너무나 바쁜 삶을 연마해 가느라
홀로 대학병원을 찾았다. 천만 원도 아니고 3천만이라는 거대한 액수 앞에 꺼이꺼이 울던 지하철 역 안에 내가 있었다.
돈의 쓴맛을 제대로 보곤
엄마 손을 붙잡고 다른 대학병원을 찾았다.
천만 원이라는 다소 상대적으로 합리적으로 보이는 병원비에,
그리고 보험이 된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다른 소이증 자녀를 둔 어머니들 덕분이었다.
늘 그들에 대한 감사가 마음 한편에 있다.
첫 수술은 내가 느껴본 고통 중에 탑이었고,
두 번째 수술에서는 ‘왜 나만’이라는 덫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분명 수술을 하면 행복해질 거라 믿었던 나의 청소년 시기의 내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붕대를 풀고 새로 생긴 나의 귀를 마주했을 때였다.
엄청난 고통과 맞바꾸기에 오른쪽 귀와 같지 않았다.
실망이 앞섰고 눈물이 절로 났다.
무엇을 위한 수술인가. 작고 좁은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 마음을 가족들에게 토해냈다.
난 분명 똑같은 귀를 바랐는데, 아무 쓸모없는 귀 수술이 아니었느냐고.
난 이 순간을 20년 넘게 바랐는데.
울며불며 붕대를 칭칭 감고 눈물을 토해낼 때
작은 언니가 내게 말했다.
“우리가 네 옆에 있었잖아. 우리가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
뭐라 답할 수 없었다. 목구멍이 타올랐다.
미안함의 조각들과 깊은 실망감이 뒤엉켜 생각에 꼬리를 물었다.
붕대를 칭칭 감고 살이 잘 차오르길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블로그에 생각정리를 하며 이런 글을 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사하다. 나의 수술이 가능했고, 가족들이 나를 간호해 주었고, 수술을 잘 견뎌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아놓고선 감사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닐까. “
가족들의 마음에 죄를 짓지 않기로 했다.
그리곤 다시금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나를 만들어준 모든 것에 감사를 기리며 살기로.